[세종=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지난 6월 29일 당시 한훈 통계청장이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으로 임명됐을 때 농식품부 안팎에서는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1992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재정부에서 전략기획과장·경제예산심의관, 통계청장 등을 역임한 그는 32년 공직 생활의 대부분을 거시경제 분야에서 일한 경제정책통으로 통했기 때문이다. 굳이 농식품부와의 인연을 꼽자면 사무관 시절 예산실 농림해양예산과에 근무했다는 정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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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기우들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사라진 분위기다. 이제 한 차관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에 부처내 신망도 두터워지고 있다. 임명 2주 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농작물 재해 대응부터 럼피스킨병 국내 첫 발생, 고공행진하는 식품·외식물가 대응 등 잠잠해질만 하면 터지는 이슈들로 한 차관은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올해 호우피해 지원을 기존보다 3배 가량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차관의 공이 컸다. 올해 6~7월은 호우 및 태풍 카눈으로 인해 농작물 7만1400ha(헥타르), 가축 97만마리, 농업시설 269ha 등이 피해를 입었다. 이같은 재해가 일어났을 때 가장 큰 난제는 적절한 수준의 피해복구 지원 방안이다. 매년 농가에서는 복구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한 차관은 매일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편, ‘복구지원 원칙’을 꼼꼼히 살피며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고심했다. 그 결과 그간 지원기준이 낮았던 10개 품목을 선정해 복구 단가 현실화 및 보조율 인상 등 유례없이 지원금을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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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칠한 키와 온화한 성품을 가진 한 차관을 두고 농식품부에서는 ‘키다리 아저씨’로 불린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가며 후배들과 점심 식사를 하는 등 언제나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성품은 기재부 근무 당시부터 유명했다. 기재부 예산실에 있으면 예산안 준비로 며칠간 밤샘 업무를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온화한 성품의 인물이라 해도 많이 예민해져 날카롭게 말을 내뱉기 일쑤인데, 한 차관은 당시에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걸로 예산실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평소에는 차분하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맨’이다. 통계청장 재직 시에는 ‘자연재해 통계지리정보서비스(SGIS)’ 아이디어를 직접 내기도 했다.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통계가 무엇인지 고민하다 태풍 등 재난 상황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한 시의성 있는 통계를 줘야겠다는 고민이 묻어난 결과물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사소한 업무 하나도 허투루 하는 일이 절대 없다”며 “회의 때도 다각도로 신중하게 조언하고, 아이디어를 건네주기도 하며 애정을 갖고 일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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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농식품부 예산안 편성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2024년도 예산 편성 작업 당시 범정부적인 건전 재정 기조 하에서 국정과제 성과 창출을 적극 뒷받침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 차관은 각 국별로 만나 일일이 내용을 보완해줬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일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농식품부 예산은 올해 대비 5.6% 증가한 18조 3330억원이다. 내년도 국가 총지출 증가율(2.8%)보다 2배 높은 수준이다. 농식품부 예산 증가율이 국가 총지출을 보다 높은 것은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