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자고 일어나면 몸값이 뛰면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 이상)이 줄줄이 탄생하고, 투자사들도 손쉽게 대박을 냈다. 그러나 이제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이 만들어낸 거품이 빠른 속도로 꺼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땐 누구나 돈을 벌지만, 물이 빠지면 진짜 실력이 드러난다. 어느 때보다도 투자대상을 깐깐하게 골라야 하는 ‘긴축
기술혁신, 기업가정신 대가로 꼽히는 모토하시 카즈유키(사진) 도쿄대 교수는 7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될성부른 기업을 골라내려면 보이지 않는 영역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며 “대기업 솔루션이 구현되다가 막히는, 드러나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말했다.
모토하시 교수는 도쿄대 공학석사, 미국 코넬대 경영학 석사, 게이오대 경영·상업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오랜 기간 기술과 경영을 접목, 과학과 산업을 연계한 국가혁신시스템이나 정보기술의 경제적 영향, 중소기업 혁신, 기업가 정신 등을 연구해왔다. 1986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의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산업성(옛 통상산업성)에서 일본 정보통신기술(ICT), 중소기업 정책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모토하시 교수와의 인터뷰는 오는 22일 글로벌대체투자컨퍼런스(GAIC) 기조연설을 앞두고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모토하시 교수는 지금까지 GAFA(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나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가 기술패권을 주도했지만 이제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코마츠와 같이 사물인터넷(IoT)을 적용한 제조업체들이 응용 분야에서는 한발 앞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토하시 교수는 미래를 이끌 기술로 인공지능(AI)과 유전자 변형 기술을 꼽았다. AI 중에서도 특히 미국 오픈AI가 개발한 초대형 인공지능 모델 GPT나 구글의 딥마인드가 제시한 AI모델 가토(GATO)의 확장 등 ‘그라운드 모델’에 주목했다. 바이오쪽에선 크리스퍼(CRISPER) 유전자 가위 기술을 눈여겨봤다.
일본 정부 부처에서 일하면서 각국의 기술전략에 대해 고민해온 모토하시 교수는 한국에 대해 IoT를 전략 기술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모두 강하기 때문에 IoT 기술에서도 앞서 갈 수 있다”며 “일본과 중국이 더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기에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경우 경쟁이 치열한 영역일수록 신기술에 대한 기회를 빨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운영책임자(COO)와 같은 기업의 C레벨 경영자들이 신기술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중요 요인으로 꼽았다.
또 기술혁신과 더불어 기술 외적인 부분에서도 다양한 혁신을 추구할 것을 주문했다. 대표적으로 마케팅과 조직에서의 혁신이다. 그는 “기술을 통해 소비자를 더 많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마케팅 혁신”이라며 “조직혁신은 새로운 경영 스타일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중간에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평가했다. 훌륭한 사업모델만 살아남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다만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을 기회가 제한적이라면, 이는 사회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스타트업 투자유치가 어려워진 상황에 대해서는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정책대응으로 주요국이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성장성에 대한 평가가 깐깐해진게 사실이다. 모토하시 교수는 “밸류에이션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쪽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스타트업의 몸값을 대폭 깍기 위해 할인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타트업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동반 성장 파트너로서의 벤처캐피탈(VC)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VC가 단순히 돈을 대주는 데에서 그칠게 아니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일정부분 비즈니스모델을 전환하거나 피봇팅하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봇팅은 당초 사업 아이템에서 성과가 안 나거나 시장 반응이 예상과 다를 경우 사업체의 인적구성이나 기술은 유지하되 사업 방향을 바꾸고 전략을 다시 세우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