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리더십이 韓·日 기업 희비 갈랐다

일본정부 엔저 밀어주기.. 소니 5년만에 분기 흑자
한국 경제민주화 옥죄기.. 현대차 11% 영업익 감소
  • 등록 2013-04-29 오전 6:00:00

    수정 2013-04-29 오전 6:00:00

[이데일리 이진철 성문재 기자] 지난 26일 오전 7시30분 서울 플라자호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5단체 상근부회장들이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첫 긴급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우리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엄중한 상황임을 고려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에 재계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뉴스였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날 오후 2시 기아자동차는 올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액은 11조848억원으로 전년 같은기간에 비해 6% 줄었고, 영업이익도 7042억원으로 35.1%나 감소했다. 노조의 주말특근 거부에 따른 생산감소가 그대로 실적에 반영됐고, 엔화약세로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된 결과다.

같은 날 오후 4시껜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 600여명이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정문을 막고 집회를 열었다. 울산·아산·전주 공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전면 파업을 벌인 뒤 상경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전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경찰과 대치했다.

한국 대표 수출기업.. 엔저·경제민주화 외풍에 ‘흔들’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맡고 있는 한국 대표 수출기업들이 대내외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밀어붙이면서 기업의 투자심리가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비정규직의 차별시정 요구도 노사관계를 불안하고 만들고 있다. 일본정부의 과감한 엔저 정책으로 가격경쟁력이 살아난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한국과 일본의 간판 기업들은 올 1분기 중 실적희비 쌍곡선을 그렸다. 글로벌 엔화 약세 후폭풍은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 대표기업들의 1분기 실적악화로 현실화됐다. 두 나라 간판기업들이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비슷한 제품을 놓고 샅바싸움을 하는 탓에 엔화 환율은 한국 기업의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최근 엔·달러 환율은 4년여 만에 가장 높이 상승(엔화가치 하락)하며 100엔에 육박한 상태다. 일본 전자업계를 대표하는 소니는 5년만에 처음으로 지난 4분기(1~3월) 흑자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005380)는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에 비해 10.7%나 줄었다. 현대차는 연초 사업계획에서 올해 엔·달러 환율을 86~87엔 정도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정부 정책으로 엔화 가치가 급격히 절하하면서 2분기에는 평균 100엔이 넘어갈 것으로 보고 대응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포스코(005490)는 원료가격 상승분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면서 가격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엔화약세로 가격경쟁력이 높아진 일본기업 때문에 가격인상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재열 포스코 마케팅전략실장은 “엔저로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기계 등 주요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최근 엔저로 매출과 수익성이 감소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엔저 효과가 한국과 일본의 간판기업 실적 명암을 갈라놓고 있다.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의 간판기업들은 ‘원고-엔저’의 난관에 허덕이며 실적이 뒷걸음질 치고 있다. 사진은 울산항 자동차 수출부두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日정부·기업 합심 총공세.. 한국 수출 간판기업 속수무책

두 나라 간판 기업의 실적이 엇갈리는 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두나라 정부의 리더십 차이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작년 12월 출범한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은 일본기업들이 바라던 엔고정책을 엔저로 급선회한뒤 산업계에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로손과 세븐&아이홀딩스 등 일본 유통업계는 지난달 초 직원 임금인상에 나섰고, 이는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자동차업계 전반까지 확산됐다.

일본 정부는 엔화 약세라는 선물을 통해 기업들의 수익성을 개선시켰고, 기업은 임금인상으로 화답하며 정부의 디플레이션 탈피 노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기업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앞뒤 안가리고 대기업을 때리는 방식이어서 정상적인 기업활동마저 위축시키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는 통상임금과 사내하도급,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혼란이 심화되고 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협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서 “하지만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각종 경제·노동 관련 입법들은 동반성장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사회양극화와 기업투자를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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