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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공공재 성격이 강한 국내 은행의 경우 은행장의 연임·재연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적폐로 규정할 정도로 차갑다. 재직 중 성과가 폄훼되고 근속연수가 지금처럼 짧아서는 비(非)은행 부문 강화를 통한 수익원 다각화, 글로벌 진출 등 장기적 안목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윤 원장 발언에 대한 A은행장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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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와 주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은행장의 연임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주사 회장과의 파워게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은행장의 연임·재연임을 막아야 한다든지, 장기집권 등과 같은 적폐 프레임으로 몰아서는 은행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은행권에서도 11년째 연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사례와 같이 재임기간 성과평가를 통해 공과를 따져 연임이 유연한 구조가 확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이데일리가 지난 2010년 8월부터 현재까지 8년간 17개 국내은행 전체의 역대 은행장 58명의 평균 재임기간을 분석한 결과 38.5개월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0년 한국금융연구원이 2004년부터 2010년 8월 사이에 재직한 국내 은행장의 평균 임기(40.4개월)를 조사한 때보다 1.9개월 축소된 수치다.
은행장 임기가 짧다보니 정작 은행에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 조차 수십명에 달하는 전직 은행장 이름을 꽤뚫고 있기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 체이스의 CEO가 14명이 바뀐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니다. 시중은행 한 직원은 “2~3년마다 은행장이 교체되다보니 전직 은행장 이름을 줄줄이 외우기란 불가능하다”며 “외국계은행과 같이 존경받는 장수 CEO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규제가 강화된 금융산업 특성상 해외진출의 경우 현지 사무소를 개설 또는 지점으로 전환하는데 통상 3년이 걸린다. 현 은행장 임기로는 해외점포 한곳도 내기 힘든 실정이다. 국내 금융환경이 단기성과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까닭에 당국이 아무리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유도해도 가이드라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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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국내 증권업 CEO 재임기간과 경영성과’ 보고서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 모두에서 단기재임 CEO보다는 중기재임 CEO가, 그리고 이보다 장기재임 CEO의 경영성과가 우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정 ROA의 평균은 △단기재임(1~3년차) CEO -0.33% △중기재임(4~6년차) CEO 0.03% △장기재임(7년차 이후) CEO가 0.27%다. 조정 ROE의 평균은 각각의 그룹에 대해 -1.11%, 0.16%, 2.43%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EO의 경영성과는 재임연차가 경과함에 따라 꾸준히 향상되는 모습을 나타냈다”며 “그 원인은 장기재임의 기회를 통해 본인의 우수한 경영역량을 일관성 있고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성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우선 ‘2년 혹은 3년 임기’라는 경직된 틀이 걸림돌”이라며 “단기 임기로 인해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경영전략에 반영하거나 성과가 가시적으로 도출되기 전에 CEO 자리를 떠나야 하고 후임자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