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열전]⑤가스·난방비 내려도 한전 요지부동 이유

저유가에도 전기요금엔 '연료비 연동제' 적용 없기 때문
2011년 도입 결정해놓고 재작년 백지화..정부정책 혼선
기재부·산업부 '입김' 따라 전기요금 인상, 누진제 유지
전문가들 "누진제 등 불합리한 요금체계 당장 바꿔야"
  • 등록 2016-04-30 오전 6:00:00

    수정 2016-04-30 오전 6:00:00

지난해 한전이 거둬 간 전기료가 전년보다 1.5% 늘어 53조963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기 소비량이 늘면서 납부한 전기료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1분기에만 전기료가 14조원이 넘어 저유가가 계속될 경우 한전의 흑자 행진이 예상된다. (단위=억원, 출처=산업통상자원부)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내달 1일부터 도시가스 요금이 평균 5.6%, 지역난방비가 평균 4.58% 인하된다. 도시가스를 사용하는 1660만 가구, 지역난방을 도입 중인 전국 190만 가구가 각각 월 1415원, 월 2400원씩 요금 절감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1월, 3월에 이어 올해만 세 차례 연속 인하다. 한국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는 저유가로 인한 원가 인하요인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도시가스·지역난방 요금이 잇따라 인하됐지만 전기요금은 그대로다. 저유가로 인한 원가 인하 효과는 동일한데도 한국전력(015760)공사는 다른 공사와 달리 요금에 이를 반영하지 않는다. 전력 원가는 내려가는데 판매가는 그대로 유지하다 보니 한전은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한전이 전기를 팔아 얻은 매출만 53조9636억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치다. 그럼에도 전기요금은 요지부동이고 한전은 조용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난해 한전이 거둬 간 전기료 53조9636억

가장 큰 이유는 전기요금이 ‘연료비 연동제’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 생산에 쓰이는 석탄·천연가스·중유 등의 가격 변동을 소비자 요금에 반영하는 제도다.

현재 가스 요금, 지역난방 요금에는 이 제도가 도입돼 있다. ‘도시가스요금 및 발전용요금 연료비 연동제 시행지침’에 따르면 가스요금의 경우 2개월(홀수월)마다 산정한 원료비가 기준원료비의 ±3%를 초과해 변할 경우 요금을 조정하게 된다. 지역난방 요금은 가스요금과 연동돼 조정된다. 저유가인 현재는 원료비 인하로 요금이 자동적으로 내려가게 된다.

그러나 전기요금에는 이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다. 정부는 규정까지 바꿔 도입해놓고 나중에 백지화하면서 정책 혼선을 빚었다. 앞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는 2009년 6월 당시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를 2011년부터 본격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산업부는 2011년 7월 도입을 결정하면서 규정을 바꿨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을 유보했고 재작년 6월 ‘전기요금 산정 기준’을 바꾸면서 백지화했다.

산업부 전력진흥과 관계자는 “당시엔 전기요금이 석유·가스요금보다 너무 낮았기 때문에 전기료를 올리고 전기 소비도 줄이려는 취지에서 제도를 도입했다”며 “시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기료가 자주 변할 경우 국민들에게 혼란을 빚을 것이라는 판단에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그 당시보다 전기요금도 많이 올라 제도도입 필요성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전기요금, 유가보단 산업부 장관에 ‘좌지우지’

이 결과 현재 전기요금 결정 체계는 시장 요인보다는 산업부 장관의 승인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전기사업법(16조)·물가안정에 관한 법(4조)에 따르면, 한전이 전기요금 약관 개정안을 만들면 산업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를 거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한전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이 같은 기재부 협의·산업부 승인 절차를 거쳐 전기요금을 매년 인상했다. 여기에 저유가까지 겹쳐 한전은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현행 요금결정 구조, 저유가 상황에서 한전은 이 같은 흑자 행진을 계속할 전망이다.

더군다나 산업부는 ‘징벌적 요금’ 논란을 빚는 주택용 누진제 개편이나 요금 변동에 선을 긋고 있는 상황이다. 주형환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원가 요인을 반영해야 하지만 에너지 신산업,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략에 전기요금이 시그널 효과가 있다”며 “그런 부분을 감안해 (현 수준대로)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이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누진제를 개편해 불합리한 전기요금 체계를 당장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영 중앙대 교수(전 지식경제부 에너지정책전문위원)는 “현재는 정부가 법으로 전기요금을 통제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 시장 상황이 반영된 요금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많이 쓸수록 할인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비싸게 요금을 물어야 하는 누진제도 합리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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