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첫 메시지는 `비상계엄`…“강압의 시절로 회귀 않길”(종합)

'노벨문학상' 한강, 첫 공식 기자회견
5·18 다룬 '소년이 온다' 언급하며
"큰 충격, 젊은 군인 태도는 인상 깊어"
'채식주의자' 유해도서 낙인 가슴 아파
노벨박물관에 소장품 '찻잔' 기증도
  • 등록 2024-12-07 오전 1:04:20

    수정 2024-12-07 오전 1:08:56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바라건대 무력이나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방식으로 통제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시아 여성 작가 처음이자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한강(54)의 첫 메시지는 한국의 ‘비상계엄’에 대한 발언이었다.

한강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첫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관련 질문이 나오자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이같이 작심발언했다. 한강이 지난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된 후 질의응답이 있는 회견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상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소년이 온다’ 쓰려 1979년 계엄상황 공부

한강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을 공부했는데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2024년 겨울 상황이 (이전과) 달랐던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 되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이어 “맨몸으로 장갑차를 멈추려는 사람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사람도,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도, 마지막에 군인들을 향해 잘 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봤다”면서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진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또 한강은 작전에 투입된 젊은 군인들이 무력 사용을 주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며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령을 내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습니다만 보편의 가치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 적극적인 행위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바라건대 무력이나 어떤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엄령 이후 한국의 표현의 자유 문제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는 “앞으로 상황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면서도 “언어의 특성 자체가 강압적으로 눌러서 막으려고 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계속해서 진실이 있을 것이고 언어의 힘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제2의 한강’ 위해선…좋은 독자 많이 나와야

한강은 자신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둘러싼 10대 청소년 유해도서 지정 논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한강은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공감하면서 읽어주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또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그냥 이 책의 운명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이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하는 것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전격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경내로 진입하려는 계엄군을 붙잡아 막아서고 있다. (사진=뉴스1).
특히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도서관에서 몇천권의 책이 폐기되거나 열람이 제한됐다”며 “저는 도서관의 사서 권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분들이 많이 고민하고 책들을 골라서 비치하는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이어 “그런데 자꾸 이러한 상황이 생기면 아마 검열하게 될 것 같다. 그런 게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또 한강은 독서를 통해 “공존하는 법, 타인을 이해하는 법,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게 된다면서 “그런 인문학적인 토양의 기초가 되는 것이 도서관인데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잘 지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도 남겼다.

한국에서 ‘제2의 한강’을 배출하기 위해선 “어릴 때부터 최소한 문학작품을 학교에서 서너 권 읽고 토론하고 다각도로 이야기 나누고 문학작품을 읽는 근육 같은 것을 기를 수 있게”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단 좋은 독자들이 깊게 읽고 흥미롭게 읽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독자들이 많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기자회견 현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학은 여분의 것이 아닌 꼭 필요한 것

문학의 역할을 묻는 말에는 “문학이란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행위”라고 했다.

한강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결정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문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10월 10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한강의 작품 세계를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한강은 이날 노벨상박물관에서 진행된 ‘노벨상 수상자 소장품 기증 행사’에서 집필할 때의 일상이 담긴 옥빛 찻잔을 메모와 함께 기증했다. 노벨상의 전통인 박물과 레스토랑 의자에 서명도 남겼다. 한강의 찻잔은 노벨상박물관에 영구 전시되며, 박물관측은 한강이 직접 소개한 사연을 추후 관람객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한강은 생리학·물리·화학·경제 등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이날부터 12일까지 이어지는 노벨 주간(Nobel Week) 동안 회견, 강연, 시상식, 만찬(연회), 낭독회 등 다채로운 행사에 참석한다.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찻잔과 메시지.(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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