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차명계좌 거래 증권사 직원 처벌 과하다

  • 등록 2013-07-25 오전 6:00:00

    수정 2013-07-25 오전 6:00:00

[이데일리 김세형 기자]‘수십억원씩 해먹는 이들은 잡지도 못하면서 실적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차명거래를 한 직원들만 족치는 게 말이 됩니까’

최근 한 증권사에서 내부 통제를 담당하는 컴플라이언스 부서 팀장한테서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증권가가 주식시장에 침체 여파로 잇따른 구조조정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려 알려진 사실이다. 중소형사에서 시작된 감원 바람이 이제는 대형 증권사까지 강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차명계좌 거래로 적발된 대우증권과 IBK투자증권 임직원에 대한 조치 결과가 나오자 더욱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조치 대상 임직원 수가 수백명에 달해 자칫 증권사만 다니면 죄다 범법자 취급을 당할 판이다.

처벌 수위도 상당히 높아 과징금 부담은 물론이고 인사상 불이익도 걱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차명계좌 잔고가 5000만원이라면 5000만원 전부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차명계좌에 든 돈을 죄다 불법이익금으로 보고 몰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수준의 벌금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차명거래 계좌는 법으로 금지된 만큼 당연히 해서는 안될 행위다. 하지만 실적을 내라는 회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차명계좌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증권업계 현실이다.

증시 침체가 길어지는데 어느 누가 주식시장에 들어올 것이며 턱하니 계좌를 맡기겠는가. 그래서 차라리 내 돈으로 실적 올리고 말지 하는 마음에 없는 돈, 있는 돈을 차명계좌에 넣어 두고 돌리는 일이 다반사다. 회사의 실적 독려에 자기 돈 500만원을 증시에 넣고 약정 실적을 높이다가 오히려 손해 본 직원이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증권사 직원들의 차명계좌 거래는 사실상 은행원이 가족을 필두로 지인들에게 신상품에 가입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부정하게 빼돌린 돈을 숨길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만드는 것과는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증권사에 다닌다는 이유로 함부로 계좌를 까보는 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 개인정보제공동의서를 받아서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직원들을 범법자로 가정하고 보고 뒤진 셈이기 때문이다. 증권사 다니는 것 자체를 범죄로 몰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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