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앞으로 뉴타운 출구전략이 본격화해 매몰비용 폭탄이 터지면 어쩔겁니까?” “해제되는 곳이 과연 많을까요? 이미 진전된 사업을 청산하려면 그간 써온 막대한 사업비를 주민들이 직접 갚아야 합니다. 그걸 알고도 해제 신청하긴 어렵겠죠.”
기자가 짐짓 으름장을 놓자 서울시 담당자가 내놓은 답변이다. 사견(私見)임을 전제했지만 말 속에 뼈가 있다. 현재 뉴타운·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다가 해산된 추진위원회에 대해선 서울시가 재정으로 사용비용의 최대 70%까지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수십~수백억원대 돈을 쓴 조합에 대해선 비용을 지원할 법적 근거도, 재원도 없다. 건설사 등으로부터 빌려 쓴 이른바 매몰비용 처리 방안이 없는 한 조합이 설립된 구역의 주민들이 손해볼 게 빤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석상에서 정부를 비판했다. 박 시장은 지난 14일 한 토론회장에서 “뉴타운은 정부가 나서서 지정해놓고 지금은 책임을 안 진다“고 질타했다. 이 이례적인 행동의 이유도 같은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가 뉴타운·재개발 조합의 매몰비용 처리를 위해 비용 분담과 건설사의 법인세 감면 방안 등을 건의했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기 때문이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뉴타운·재개발 조합의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구역 해제 신청이 이뤄질 전망이지만 시 관계자 말대로라면 기대했던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제는 사실 매몰비용 뿐만이 아니다. 뉴타운 해제 이후에도 낙후한 지역을 되살릴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해제까지 가기도 험난한데 해제 이후도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14·15일 이틀에 걸쳐 찾은 창신·숭인 뉴타운의 주민들에게서 기자가 수차례 들었던 말은 “재개발은 분명 필요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주거환경관리사업 등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지만 그 근본은 주민이 자기 돈을 들여 낡은 집을 개보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로 월세가 노후 생계자금인 노인들이나 손바뀜으로 들어선 투자자들이 셋방을 비우고 수천만원씩 드는 집수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창신·숭인 지구의 일부 주민들은 애물단지가 된 집을 팔고 고향으로 내려갈 궁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이것도 집이 팔린다는 전제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울한 전망이지만 지금으로선 정부 지원과 주민 호응, 어느 쪽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방법은 뉴타운 출구전략이 아닌 연착륙 방안을 고민해 보는 일이다. 기실 뉴타운 사업이 역풍을 맞게 된 건, 부동산 시장 침체기에는 굴러갈 수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과거 주택시장 호황을 빌미로 공공이 부담해야 할 도로나 공원 등 기반시설 개선비용을 주민에게 대거 부담지우다 보니 가뜩이나 떨어진 사업성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연초 같은 구조로 짜여졌던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의 과도한 기부채납 비율을 줄여주는 등 합리적인 개선안을 내놔 공공성을 확보하면서도 한강변 아파트들의 층고 제한에 대한 주민 불만을 잠재운 바 있다. 규제완화 등으로 줄 건 주고 원주민 재정착방안 등 챙길 건 챙기는 뉴타운 사업의 ‘재활용’을 기대하긴 어려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