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주총을 축제로 바꾼 힘

  • 등록 2013-05-09 오전 6:00:00

    수정 2013-05-09 오전 6:00:00

[뉴욕=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자본주의의 우드스톡’으로 불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를 지난 주말 직접 다녀왔다.

오래 전부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돈 있는 자들만이 참석하는, 또 워런 버핏이라는 인물을 마치 신(神)인양 떠받는 듯한 모습에 마음 한 편에 반감도 자리잡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물론 이번 사흘간 출장이 버크셔 주총에 대한 기자의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은 것은 아니지만 판에 박힌 주총이라는 틀을 축제로 바꿔놓을 수 있었던 버핏과 버크셔, 그리고 그 주주들에 대해 적어도 경의를 표하게 됐다.

전체 인구 40만명의 네브라스카주의 자그마한 도시 오마하에 3만7000명 가까운 주주와 언론인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버핏 CEO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진솔했다. 지난 1967년 주당 19달러에 인수한 버크셔 주식가치를 12만달러 가까이 끌어올렸고 지난 한 해에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보다 높은 15%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5년간 장부가치 성장률이 S&P500지수에 다소 못미쳤다며 주주들에게 송구스러워 했다.

또 주주들과 투자회사들에게 열성적이었다. 한국 나이로 85세나 되는 고령이지만 5시간의 질의응답(Q&A) 세션을 포함해 무려 7시간이나 계속된 행사를 최선을 다해 임했다. 100개에 가까운 질문 가운데 어느 하나 건성으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주총 개회 때는 단상에서 내려와 ‘YMCA’를 개사해 만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흥을 돋구었고 개회 전과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투자회사들을 위해 마련한 부스를 찾아 제품을 홍보하는 역할까지 도맡았다.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투명했다. 자신의 큰 아들을 비상임 이사회 회장으로 점찍었다고 밝혔지만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회사를 실질적으로 이끌 후계자 역할을 알리고 이후 회사의 방향성까지도 확실하게 공개하며 주주들을 안심시켰다.

버크셔의 노력도 돋보였다. 투자회사들을 위한 제품 설명회와 판매장터를 개설하고 이를 각 지역언론을 통해 적극 홍보했다. 주총 전날 리셉션과 거리 공연, 마라톤 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했다. 대규모 진행요원들을 배치해 주주들 요구에 성심껏 대응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버핏과의 질의응답이 마무리되자마자 주주와 언론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총장 내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이사회 역시 어디서든 쉽게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주주들의 역할 또한 가볍지 않아 보였다. 주주들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한 해 실적을 평가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자신의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로 생각하는 듯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버크셔가 투자한 회사들의 부스를 돌며 제품 하나하나를 살피고 제품을 직접 구매하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기자가 만난 대다수 주주들은 버크셔 주총에 짧게는 몇 년째, 길게는 수십년째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대형 투자회사나 기업 주주들도 많았지만 노후를 대비한 자금을 버크셔에 묻어두고 있는 장기 투자자들이 대다수였다(버크셔 A주식은 한 주에 1억원이 넘고 유동성이 적어 단기 투자에 적합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버핏에게 질문할 기회를 얻은 뒤 그의 건강을 걱정해 “햄버거를 좀 줄이라”고 조언하고 행사장에서는 그의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긴 대기시간을 마다하지 않는 게 이들 주주였다.

결국 일개 주총이 거대한 축제로 자리매김한 데는 장기 투자자와 투자회사들의 수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그들에게 열성을 다하는 열성적인 기업과 그 CEO와 회사를 믿고 애정을 쏟는 장기 투자자의 결합이 원동력이 됐다.

하루 아침에 주총의 형식을 흥겹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기업문화와 투자문화도 더디지만 꾸준하게 이런 성숙의 과정을 밟기를 기대해 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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