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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시골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향수병에 걸려서 빗소리가 그리웠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 비 오는 날 창밖에서 들리던 미국 시골의 빗소리는 생경하고 낯설기만 했다. 몇년 뒤 서울로 돌아온 후 코로나19 자가격리로 한참을 집에 머물던 어느 날, 창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그리워하던 빗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예전에 막연하게 그립던 빗소리는 그냥 비가 내리는 소리가 아니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도로에 떨어지는 빗소리였다. 딱딱한 길 표면 위로 떨어지는 경쾌한 물소리, 찰박찰박 얕게 고인 물에 차바퀴가 지나가는 소리에 경적소리까지 어우러졌을 때 그 빗소리가 드디어 완성됐던 것이다. 그리움은 빗소리뿐만 아니라 모더니티와 속도가 만들어내는 비의 풍경을 향하고 있었다.
속도는 모더니티의 핵심이다. 속도는 합리적인 과학지식과 기술발달의 결과로 발명됐지만 속도가 만들어내는 감각과 풍경은 사뭇 다르다. 빠른 속도는 영화감독 왕가위가 흔들리는 카메라로 촬영한 영화 ‘중경삼림’(1994)의 세상처럼, 보이는 세계를 초월해 모든 것이 흐릿하면서 서로 침투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독일 시인 하이네는 순식간에 서로 다른 도시를 이어주는 기차의 속도에 경악하며 “철도는 공간을 살해했다”고 하기도 했고, 프랑스 시인 베를렌은 전기와 통신의 속도를 “회색빛의 소용돌이”로 비유하며 나무, 하늘, 들판이 모두 회오리 속으로 빨려들어간다고 했다.
이처럼 기술문명이 가져온 급격한 속도의 변화는 종잡을 수 없는 감각의 폭주와 맞물려 수많은 예술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됐다. 그중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미래주의’ 운동은 속도에 매혹된 시인과 미술작가들의 모임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역동성, 기술, 폭주하는 젊음과 격렬함을 추종했고, 산업문명이 만들어낸 차와 비행기, 철도가 지배하는 도시풍경을 작품의 재료로 삼았다.
“자동차는 니케여신상보다 아름답다”
1909년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는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지’에 ‘미래주의 선언’을 실으며 미래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렸다. 선언문에서 그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의 감정을 내뿜으며 대담하고 과격하게, 심지어 폭력적으로라도 과거로부터 해방돼 강력한 미래주의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전통적 예술을 낡고 시시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고상한 클래식 취향까지 경멸해 마지않던 이 극단주의자는 “폭탄 위에 올라탄 듯 으르렁대며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의 니케여신상보다 아름답다”며 새로운 문명의 상징인 속도를 전면에 내세웠다. 마리네티와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은 ‘미래주의 선언’에 이어 1910년 ‘미래주의 화가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그림에는 당시 급변하는 밀라노의 근대적 풍경이 등장한다. 위쪽에는 밀라노의 외곽지역에 건설하고 있던 전력발전소가 나오고 높은 굴뚝과 전기트램도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면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발전소나 자동차, 트램 같은 근대문물이 아니라 노동자와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다. 유럽국가 중 상대적으로 늦게 산업화 바람을 탄 이탈리아의 상황을 반영하듯, 전근대적인 교통수단과 노동력을 현대적 문물과 뒤섞여 표현한 것이다.
푸른 마구를 달고 말발굽을 치켜든 말은 대각선 위쪽 방향으로 날아갈듯 치솟으며 달려나가 맞은 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백마와 충돌하기 직전이다. 거대한 힘의 충돌 사이에는 밝고 따뜻한 색채가 흩뿌려져서 흥분된 에너지를 분출한다. 부풀어 터질 것 같은 공기에 녹아든 노동자들은 팔을 치켜들고 말의 속도에 끌려가다시피 몸을 기울여 함께 달리며 형체를 잃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다. 건물과 길, 말과 사람이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와 함께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화염처럼 피어오르는 색채의 향연, 대각선의 역동성 위에 하늘로 뻗은 건물철골과 같은 수직의 선이 표현하는 강력한 힘이 어울린 작품은 근대화가 ‘일어나고 있는’ 도시의 성장을 찬양한 영웅화다.
자동차 지나가는 순간, 형체와 소리 함께 포착
보초니가 역사화 같은 방식으로 미래주의 이상향으로서의 도시 밀라노를 묘사했다면, 보초니를 사사한 자코모 발라(1871∼1958)는 빛, 그중에서도 인공기술로 만든 빛과 속도의 추상적 풍경에 큰 관심을 보였다. 초기에 그는 밤거리를 밝히는 가로등을 그리기도 했는데, 가로등은 작가가 살던 로마에 막 설치된 최고의 신문물로 태양에 절대적으로 지배받던 전근대를 벗어나 인간이 만든 기술이 어둠을 물리친 자유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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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 배치한 자동차 바퀴는 불타오르는 것처럼 붉은색 에너지를 뿜으며 질주하고 있고, 먼 풍경이 된 하늘과 산, 나무의 풍경이 푸른색과 초록색의 실루엣으로 화면을 양분하고 있다. 이 모든 사물과 자연을 통과한 하얀 헤드라이트는 둥글게 형체를 휘감아 흐트러트리고, 다시 그 빛은 초록색과 푸른색의 눈부신 섬광으로 깜빡거리며 공기 중에 흩어진다. 가속이 붙어 굴러가는 바퀴, 에너지가 배출되는 배기구 부분의 붉은색과 푸른색은 자동차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엔진의 굉음을 시각화한 것이다. 작가는 그 강렬한 색채를 그림을 넘어 액자에까지 연결해 칠함으로써 화면을 무한히 확장하고, 실제 밤의 도로에서 그 자동차를 보는 듯한 긴 여운을 남길 수 있었다.
‘속도의 철학자’ 경고 현실로
속도를 향한 보초니와 발라의 끝없는 동경은 그들의 예술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러나 열정에 부풀어 있던 젊은 이들은 ‘속도의 철학자’라 불리던 폴 비릴리오(1932∼2018)가 경고한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배를 발명한다는 것은 난파를 발명한다는 것이고. 비행기를 만든다는 것은 항공사고를 만드는 것이며, 전기가 태어난 순간 감전도 함께 태어난다는 것을. 새로운 기술에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른다. 변화하는 근대의 세계를 탐구해 예술로 옮겨내기 위해 노력했던 미래파 예술가들의 이상은 1차대전의 발발과 함께 순진한 추종자들의 철모르는 꿈이 돼버리고 말았다. 인류의 빛나는 꿈을 견인했던 근대의 기술은 전쟁을 위해 소진됐고, 그 과정에서 전통과 관습을 타파하자는 결기에 가득 찼던 미래주의 또한 길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이수연 학예연구사는…
1979년 생. ‘문자보다 이미지’였다. 이미지의 가능성, 이미지를 읽어내는 방식에 자꾸 관심이 갔다.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한 뒤 방향을 틀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백남준 퍼포먼스 연구’란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미술전문기획사 사무소(SAMUSO) 등을 거쳐 2008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전문영역이 선명해졌다. 무빙이미지·영화·인터넷 등 미디어기술의 발전이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고든 일이다. 내친김에 미국 코넬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해 미디어기술을 입은 시각문화가 끝없이 진화하는 현장을 학술연구와 연결하는 일에까지 욕심을 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올 가을에 열 ‘백남준 효과’ 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