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비상등]60년 수출선봉장 제조업이 무너진다

한국제조업근간 전자,자동차,중화학 수출 절체절명 위기
  • 등록 2014-11-04 오전 2:00:00

    수정 2014-11-04 오전 2:00:00

[이데일리 류성 선임기자 정태선 이재호 성문재 김형욱 기자] 지난 60여년간 한국경제 성장을 견인해온 국내 제조업이 송두리째 흔들거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 수출을 주도해온 전자, 자동차, 조선, 중화학 등 주력 업종은 그야말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앞에서는 엔저를 무기로 부활한 일본과 제조강국으로 거듭나고 있는 미국등 선진국이, 뒤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타도 한국 제조업’을 외치며 협공을 하고 있다.

이들의 협공으로 한국 제조업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실제로 진퇴양난에 처한 한국 제조업은 올들어 수출 등 실적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절체절명의 비상상황을 맞고 있다.

당장 한국 제조업 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하던 한국 전자산업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등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실적 부진에 빠지면서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과 TV 등은 이미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제조업 수출은 전분기 대비 0.9% 감소했다. 전기전자기기 수출 실적이 악화된 게 원인이다.

정영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가 제품군에서는 애플과의 경쟁이 심화됐고 저가품에서는 샤오미 등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이로 인해 삼성전자 실적이 악화된 부분들이 수출 감소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3분기 스마트폰 수출액은 29억5000만 달러로 전분기 대비 1% 감소했다. 스마트폰 수출액이 하락세를 보인 것은 1년 만에 처음이다. TV 수출액도 18억1000만 달러로 전분기와 동일했다. 3분기 중 월드컵 등 TV 수요가 확대될 만한 다양한 호재들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이다.

부진한 수출 실적은 주요 기업들의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IT·모바일(IM)부문의 영업이익은 1조7500억원으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소비자가전(CE)부문도 5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적자를 겨우 면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의 추격은 전자산업은 물론 국내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국내 총수출 가운데 중국의 수출 기여도는 금융위기 이후인 2009~2013년 평균 2.6%포인트 정도였지만 올해(1~9월) 들어서는 -0.2%포인트로 역성장하며 오히려 전체 수출 규모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중국 현지 기업의 강세와 현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삭감 등은 국내 업체의 성장에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며 “미국과 유럽 지역의 전자제품 수출 규모도 줄고 있어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전자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턱밑까지 쫓아온 중국의 예봉을 꺾기 위해 중저가 제품 라인업 확대로 중국 업체들을 견제해야 한다”며 “가전 분야도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자동차 업계의 선두주자인 현대·기아자동차 또한 올 3분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현대차(005380) 영업이익은 1조6487억 원으로 18.0% 급감했다. 기아차도 5666억 원으로 18.6%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각각 7.7%p, 5.0% 포인트로 최근 2~3년 중 최저수준이다.

자동차 수출전선이 무너지고 있다. 판매증가세를 유지한 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는 그나마 낫다. 한국GM과 르노삼성, 쌍용차(003620) 등 자동차 회사는 수출물량이 급격하게 줄고 있다. 올 1~9월 회사별 수출 실적은 현대차와 기아차가 2.0%, 13.2% 늘어난 것을 빼면 한국GM(-23.7%), 쌍용차(-0.8%), 르노삼성(-1.9%), 대우버스(-60.0%), 타타대우(-59.0%) 등이 모두 큰 폭으로 줄었다.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원화 강세다. 현대·기아차의 올 1~9월 달러·원 기준환율은 1042.5원으로 지난해(1106.4원)보다 5.8%p 줄었다. 여기에 지난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휘청이던 미국, 일본, 유럽 경쟁사가 올들어 본모습을 찾고 역공을 펼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자동차 회사는 지난 5년 동안 누려 온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반면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2014년 회계년도 상반기(4~9월)에 1조 3000억 엔(약 13조 원)의 역대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일본 중앙은행은 지난 1일 추가 양적완화를 발표해 환율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내 자동차 회사의 성장 기반인 신흥 시장도 미국의 출구전략 여파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글로벌 판매량은 늘었으나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기타 지역에서만 나란히 감소세(각각 -0.2%, -2.5%)였다.

자동차 회사는 환율이나 타국의 경기침체 같은 대외 변수에 대해 국외공장 생산량 확대와 수출지역 다변화로 대응하고 있다.

기아차는 오는 2016년부터 멕시코 신규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고 현대차도 중국 4공장 신설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르노삼성은 지난달부터 북미수출용 닛산 로그를 위탁생산을 시작했다. 한국GM도 쉐보레 철수 결정 이후 줄고 있는 유럽 수출물량을 돌릴 새로운 수출 지역을 계속 모색 중이다.

하지만 환율 조건이 나아지지 않는 한 이같은 대응에도 한계는 있다. 현대·기아차의 국내 생산 의존도는 여전히 40%에 달하고, 한국GM과 르노삼성도 각각 GM과 르노라는 모회사에 속한 만큼 다른 국가의 공장과 내부 경쟁도 해야 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제공
세계 1등을 자부하는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 전망은 여전히 ‘빨간불’이다. 지난해보다 올해 수주량은 더 감소할 것이란 우려 속에 내년에도 회복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기술확보로 생산설비를 늘리고 있는 중국 추격과 엔저를 무기로 경쟁력을 강화한 일본으로 인해 국내 조선업계는 구조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게다가 국제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오일 메이저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기대를 걸었던 해양플랜트의 공백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해외플랜트 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한 430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세계 주요 석유메이저들의 해양부문 투자축소로 인해 전년 대비 78% 감소했다. 오일메이저들이 유가하락으로 투자를 꺼리고 대신 비용이 많이 드는 해양보다 육상쪽을 선호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올 3분기까지 3조원 넘는 사상 최대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가장 큰 원인도 해양 플랜트 분야 탓이 크다. 저가로 수주한데다 기술개발 등을 병행하면서 추가 비용은 물론 공기지연으로 적자폭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는 상선 수주가 10%가량 늘어나는 반면 수주금액이 컸던 해양플랜트 등의 수주는 5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내년 전체 예상수주액은 올해 수주액을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상선은 경기회복에 대비한 친환경 대형 선박의 발주가 조금씩 늘고, 셰일가스로 인한 LNG선의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 이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셰일가스 수출은 201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하면서 내년부터 LNG선 수주가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108척 중 올해 발주를 완료한 19척을 제외한 나머지는 내년부터 분산 발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재천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수주는 올해 4분기 이후 셰일가스용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발주 증가 등으로 개선될 수 있지만 낮은 유가는 해양플랜트 발주 시점을 늦추는 효과를 만들어 올해 대형 3사의 수주액은 330억 달러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변종만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도 일반 선박 발주와 세계적 석유 업체들의 설비 투자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며 “엔화 약세에 따른 일본업체의 선가 경쟁력 회복 역시 국내 조선 산업에는 부정적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이 건설한 움샤이프 플랫폼. 현대중공업 제공.
정유·화학 등 전통 굴뚝산업들의 수출 전선도 먹구름이 드리우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성장 둔화와 중국 업체들의 자급률 증가 여파로 수출 증가세가 주춤한 가운데 수익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 일본과 EU 중앙은행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 경쟁력 약화까지 우려된다.

3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수출물량은 지난 2003년 2억908만배럴에서 지난 2012년 4억4090만배럴로 9년 사이 배로 늘었지만 지난해부터 활력을 잃었다. 석유제품이 국내전체 수출품목 가운데 차지하던 수출액 기준 1위 자리를 지난해 반도체에 내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그동안 중국 수요에 집중해왔지만 최근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예전만 못한데다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동남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동남아 중산층 증가에 발맞춰 벙커C유 등 중질유뿐만 아니라 휘발유·경유 등 경질유 수출 비중도 확대하는 등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을 통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올리고 있는 화학업체들은 가까스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익성은 악화됐다. 국제 제품 가격 시황이 부진한 탓이다. LG화학(051910)은 지난 3분기 석유화학 사업에서 영업이익률 7%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이익률이 1.6%포인트 낮아졌다. 롯데케미칼(011170)은 지난 3분기 영업이익률이 1년 전보다 0.5%포인트 하락한 3.8%에 그쳤다.

우리나라 석유제품의 연도별 수출 규모 추이(단위: 만배럴, 자료: 한국석유공사)
화학사들은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늘리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예컨대 대표적 석유화학 제품 중 하나인 폴리에틸렌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등급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중국업체들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보다 많이 생산함으로써 활로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다양한 수입원 확보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카자흐스탄과 미국에서 현지 업체들과 합작해 에탄가스 기반의 생산기지 건설을 진행중이다. 기존 원료인 납사 대비 저렴한 에탄가스를 활용해 원가경쟁력 있는 에틸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한화케미칼(009830)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현지 합작을 통해 고부가 특화제품인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 상업생산을 준비하고 있다. 금호석유(011780)화학은 열병합발전소 등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어 에너지 효율과 원가 절감 효과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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