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엿보기]'브레이크 배력장치', 급발진 논란 열쇠될까

새 가설 제기 '의의'.. 디젤차는 설명 못해 '논란'
  • 등록 2013-06-04 오전 5:40:38

    수정 2013-06-04 오전 5:40:38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급발진은 브레이크의 진공식 배력 장치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자동차 급발진 연구회)

지난달 27일 자동차 급발진 연구회(회장 김필수 대림대 교수)가 세계 최초로 자동차 이상에 의한 급발진을 인정하고, 그 원인으로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 장치를 꼽았다. 단순한 운전자 과실인지, 차량 결함인지를 두고 급발진 논란이 재점화됐다.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倍力) 장치’란 말 그대로 진공을 이용해 브레이크의 힘을 키우는 장치다. 이 장치 덕분에 페달을 살짝 밟아도 묵직한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을 시작으로 장착되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진공식 배력장치가 엔진에서 발생하는 압력을 통(흡기다기관)에 저장했다가 이용한다. 브레이크로 가야 할 통의 압력이 희박한 조건으로 그 반대인 엔진으로 역류하면서 엔진의 문(스로틀 밸브)이 열리게 된다. 급발진 연구회측은 전자적 오작동이 겹치며 연료가 분사되고, 급작스런 엔진 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연구회는 이 같은 가설을 ‘압력 서지’(pressure surge)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회는 급발진 추정 사고가 이 장치가 도입된 1970년대 이후 보고됐고, 신고 사고의 약 80%가 가솔린 모델에서 나왔다는 공통점을 꼽았다. 디젤 엔진에는 스로틀 밸브가 없다.
브레이크 배력 장치(오른쪽)와 흡기다기관(왼쪽·확대), 엔진(가운데)의 연결 단면도. 급발진 연구회 제공
하지만 이 가설엔 적잖은 함정이 있다. 일단 디젤차의 급발진을 설명할 수 없다. 다수의 기계 전문가들은 단순한 압력만으로는 스로틀 밸브를 열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연구회의 가설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국토교통부도 연구회의 발표에 대해 “기술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없다”고 논평했다.

급발진 추정 사고는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에선 블랙박스와 CCTV를 통해 다수의 급발진 의혹 영상 때문에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고 영상, 영상 속 차량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 이를 부추겼다.

그러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국토교통부, 국립과학수사원을 비롯한 다수의 연구기관이 연구를 거듭했음에도 급발진을 증명할 수 없었다. 사고기록장치(EDR)에 브레이크를 밟은 기록이 없음을 이유로 ‘차량 결함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결론만 되풀이했다.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도 충돌 땐 기계적 관성력에 의해 브레이크 등이 켜질 수 있다는 것도 시험을 통해 증명됐다.

급발진 추정 사고가 날 확률은 지난해 국내 기준으로 100만분의 8(0.0008%)이다. 지난해 1800만대의 차량이 등록된 가운데 136건의 의심 사고가 접수됐다. 급발진에 대한 또 하나의 새로운 원인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기계적 결함인지, 아니면 운전자의 오작동인지 논란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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