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삼성·애플 소송 예견한 고충곤 변호사

"특허는 혁신을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척도"
  • 등록 2012-10-08 오전 6:00:00

    수정 2012-10-08 오전 6:00:00

[이데일리 류성 선임기자 김정남 기자] 지난 2010년 11월 서울대 로스쿨의 한 특허법 수업. 교수가 기말고사 문제로 과제 하나를 던졌다. “삼성전자가 애플과 특허 전쟁을 벌인다면 당신은 어떤 변호 전략을 짤 것인가?” 학생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교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해 4월. 애플은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소식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특허 전문가로 손꼽히는 고충곤(54)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ID) 부사장. 당시 과제를 낸 당사자다. 그는 “두 회사의 혈투를 어느 정도 짐작했다”고 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조차도 당시 스마트폰 ‘갤럭시S’의 성공에 취해 다가올 특허 전쟁은 예상치 못했을 때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특허 전문가인 고충곤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부사장은 이데일리와 만나 “특허 자체가 혁신을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척도”라고 했다. (사진=권욱 기자)
-특허소송이 일 것으로 예견했었나.

“지난 95년부터 5년간 미국 로펌 ‘페니앤에드몬즈’에서 특허 변호사로 일하면서 알게 된 폭넓은 인맥이 도움이 됐다. 이들 가운데 삼성전자 특허 소송 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지인들이 귀띔을 해 줘 한판 전쟁이 벌어질 것으로 짐작했다.”

그는 미국 럿거스대 전자공학과 교수를 하다가 같은 대학 로스쿨로 옮겨 졸업했다. 전자공학과 법학을 두루 섭렵한 것이다. 2002년부터 10년간 삼성전자(005930)LG전자(066570) 임원으로 두 회사의 특허팀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현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전문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전에 대한 전망은.

“특허 전문 변호사 시각에서 보면 삼성이 완벽하게 진 게임이다. 삼성이 미국 디자인 특허 판례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는 디자인 특허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대신 삼성이 내세우는 통신 특허의 중요성은 줄고 있다.”

-애플의 특허 소송 승리를 두고 자국 보호주의 얘기가 나오는데.

“미국은 특허법이 가장 앞선 나라다. 최근 언론에서 삼성이 ‘특허전에서는 져도 혁신에서는 이기겠다’고 보도했는데 어불성설이다. 특허 자체가 혁신을 측정할 수 있는 가장 객관적인 척도다. 특허전에서 패하면서 어떻게 혁신을 하겠다는 것인가.”

-삼성전자가 이번 소송으로 들어갈 금전적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껏 애플과 소송비로만 5000억원 이상 썼을 것이다. 앞으로 소송이 2~3년은 더 걸릴 것을 감안하면 최종 비용은 그 몇 배가 될 것이다.”

고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서 임원으로 특허팀을 맡을 당시 “수비만 했다”고 했다. 유형자산을 중시하는 제조업의 특성상 특허같은 무형자산은 무시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삼성과 LG에서 특허팀을 이끌 때 상황은 어땠나.

“방어하는 데만 주력했을 뿐 공세적으로 나갔던 적이 없었다. 월풀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LG 냉장고를 제소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는 최소 1조원은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걸 막아줬다. 그런데 특허팀에는 어떤 보상도 없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무형자산에 대한 기업 철학 자체가 없었던 거다.”

그는 인터뷰 내내 ‘무형자산’이란 말을 자주 언급했다. “무형자산을 자산으로 여길 줄 아는 문화가 국내 기업에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특허조사업체 페이턴트프리덤의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특허전문업체(NPE, Non Practicing Entities)에서 제소를 당한 순위에 삼성전자가 3위에 올랐다. LG전자는 9위였다.

-향후 삼성이나 LG가 특허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특허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애플, 구글, 소니 등이 모두 특허전문업체를 별도로 두고 막대한 수익을 창출한다. 특허를 방어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신규 사업으로 여겨야 한다.”

특허전문업체 오션토모에 따르면 2010년 S&P 500대 기업 시장가치의 80%는 특허 등 무형자산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업체들은 특허 사업을 차세대 블루오션으로 육성 중이다.

고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합류한 ID는 ‘국내 1호’ 지적재산(IP) 전문업체다. 현재 정부가 300억원을 출연하고,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005380)·포스코(005490) 등이 500억원을 자본금으로 투자했다. 순수 민간업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 영향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ID는 현재 500억원을 투자해 1000여건의 특허를 매입했다. 매년 특허 수수료로만 50여억원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5년 내 확실히 뿌리를 내려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것이다. 삼성이나 LG 같은 제조업체와도 단순 투자관계로만 연결되는 구도로 재편하려고 한다. 국내에서는 특허산업이란 것 이제 막 걸음마를 한 것이기 때문에 더 과감히 투자해서 건전한 생태계를 만들어 보는게 꿈이다.”

고충곤(54) ID 부사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미국 특허 전문 변호사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28세에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전자공학 석·박사를 땄다. 이후 전자공학과 교수 생활을 하던 미국 럿거스대에서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인생 항로를 특허 변호사로 전향했다. 미국 페니앤에드몬즈 로펌(5년)과 김앤장 법률사무소(3년)에서 일하면서 미국 특허 변호사로 명성을 쌓았다. 이어 국내 전자 업계에서는 드물게 10여년간 삼성전자와 LG전자 임원을 번갈아하며 두 회사의 특허팀 수장을 맡기도 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고충곤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부사장은 지난 10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특허팀을 이끌었던 지적재산(IP) 전문가다. 그는 두 회사에 있는 동안 “수비만 했다”고 말했다. “특허 같은 무형자산을 새로운 사업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고도 했다. (사진=권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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