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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2005년 5월 13일 정오였다. 이날 피해자 A(당시 60대)씨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덕현리의 자택에서 피살된 채 발견됐다. 현관문과 안방 문은 열려 있는데 인기척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웃이 사건 현장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A씨의 손과 발은 묶여 있었으며 얼굴에도 포장용 테이프가 감긴 상태였다. 범행 흔적이 드러난 지점은 한두 곳이 아니었다. 안방 장롱 서랍이 모두 열려 있었으며 A씨의 금반지를 비롯한 78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사라진 상황이었다.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기도 폐쇄와 갈비뼈 골절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경찰은 강도가 A씨의 얼굴을 테이프로 감은 뒤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며 10년 넘는 기간 장기 미제로 남고 말았다.
A씨 사건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2017년 9월 B씨가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고 난 뒤였다. 12년간 발전한 감식 기술로 지문을 이루는 곡선인 융선을 선명하게 만든 결과였다.
당시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범행에 사용된 노란색 포장용 테이프에 흐릿하게 남은 1㎝짜리 쪽지문이었는데 테이프에 있는 글자와 겹쳐져 있고 융선이 뚜렷하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노란색 박스 테이프 안쪽 속지에서 B씨의 지문 일부가 발견됐다’는 취지의 범죄현장지문 감정 결과가 나오며 수사에 진전이 생겼다.
조사 과정에서는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던 부분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경찰은 A씨의 친인척과 주민 등을 비롯해 사실상 마을의 일원을 용의 선상에 놓고 수사했는데 거짓 자백을 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었다.
A씨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주민 C씨는 검찰 수사가 이뤄진 뒤 “경찰이 나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추궁해 자백했는데 사실은 피해자를 죽이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실제로 그가 허위로 자백한 범행 도구에는 타격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등 명백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경찰도 불구속 상태에서 C씨를 6차례 조사했지만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도 진실 반응이 잇따라 나왔고 수사는 2007년 4월 중단됐다.
法 “박스 테이프 외 증거 전혀 없어”…무죄 선고
재수사 과정에서 줄곧 혐의를 부인했던 B씨는 재판에 넘겨졌고 법정에서도 “범행 현장에 간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포장용 테이프에 자신의 쪽지문이 남은 이유에 대해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시 재판에서는 C씨가 증인으로 출석해 ‘B씨는 A씨 사건과 무관하다’는 취지로 변론하기도 했다. C씨는 “당시 마을 주민 모두가 나를 의심했고 수사기관의 자백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며 “당시 진술서도 동네 주민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를 들은 내용을 쓴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건을 심리해온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는 지문이 묻은 노란색 박스 테이프가 유일하나 이 테이프가 불상의 경로에 의해 범행 장소에서 발견됐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박스 테이프 외 피고인의 범죄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며 “피고인으로서는 범행 후 12년이 지난 후 지목돼 알리바이 등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 9명 중 8명도 B씨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불복한 검찰은 항소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2심 재판부 또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피고인의 쪽지문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며 “원심의 판단은 적법하고 검사의 항소는 이유 없어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결국 검찰은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A씨 사건은 범인의 1㎝ 쪽지문만을 남긴 채 다시 미제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