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 명예가 붙은 직위를 찾아보기란 어렵지 않다. 명예(名譽)라는 의미 그대로 ‘세상에 널리 인정받아 얻은 좋은 평판이나 이름’을 가진 자가 그만큼 많다는 것이리라. 명예가 달린 감투를 가진 자는 무엇보다 그 명예스러운 직위를 평생 쓸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는다. 명예감투를 수여한 조직이나 기관등은 일체의 보수나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감투를 주는 자는 그것을 받는 자의 명성을 활용할 수 있다. 명예 직함을 받는 자 또한 주는 쪽의 권위가 더해지면서 평판이 더욱 높아지는 효과를 거둔다. 이른바 포지티브 네트워킹의 확대다. 주는 자와 받는 자 모두가 윈윈(Win-Win) 하는 구도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명예직책이 활성화되고, 남발하는 조짐까지 보이는 이유다.
단 한군데 예외적인 곳이 있다. 바로 기업의 세계다. 이 곳에서만은 유독 명예가 달린 직함은 찬밥 신세다. 오히려 명예라는 단어가 ‘불명예’스럽게 사용되기까지 한다. 명예퇴직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이다. 정년퇴직의 반의어가 되기도 하고, 인력감축과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수시적 인력 구조조정은 도도한 시대적 추세다. 회사나 근로자 모두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이는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 희망퇴직이 갈수록 빈발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인력조정의 원인은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회사와 퇴직을 당한 근로자가 갈라서는 것이다. 출발점에서 백년해로를 기약했던 부부의 이혼과 흡사하다. 문제는 부부 모두 행복하게 헤어지는 이혼은 드물다는 데 있다.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명예라는 단어를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한 의미로 활용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 그 첫 단추로 ‘명예부장’이나 ‘명예상무’란 직함을 만들면 어떨까 한다. 가령 삼성전자(005930)에서 20년간 근무하다 퇴직하는 홍길동 부장에게 삼성전자 명예부장라는 새 명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물론 재직중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과 인품을 입증한 퇴직자에 한해 명예직함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회사입장에서는 구성원을 불가피하게 내보내더라도 포지티브 네트워킹을 강화할 수 있는 효과를 거둘수 있다. 명퇴나 조퇴로 어쩔수 없이 회사를 떠나는 자라도 명예직함이 함께하는 한 평생 충직한 우군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명예직함 제도가 상시적 명퇴, 인력 구조조정의 시대가 낳는 심각한 폐해를 모두 없앨순 없다. 하지만 업계에 명예직책 제도가 활성화되면 퇴직자, 회사 모두 윈윈하는 효과를 거두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조직을 떠나는 자에게 퇴직금에 명예직함을 더해주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정이 흐르는 자본주의’란 바로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