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보험업계 최초로 수화 상담사 운영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는 삼성화재(000810) 서교동 사옥. 모두 이어폰을 끼고 상담을 하고 있지만, 유독 모니터를 보며 손짓을 하는 상담사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바로 삼성화재의 수화 상담원인 한미화·박진희 상담사다.
삼성화재는 올해 8월부터 보험업계 최초로 수화 상담사 2명을 채용해 청각장애우들에게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화재 설계사나 청각장애우의 가족, 주변인이 청각장애 고객을 대신해 대표번호(1588-5114)로 전화해 상담을 예약할 수도 있다. 화상 통화를 할 수 있는 고객 연락처, 요청 내용, 통화 가능 시간 등이 확정되면 수화 상담사는 예약시간에 청각장애 고객에게 연락과 상담과 중개 안내를 진행한다.
중개안내란 상담 중에 바로 답변하기 어려운 내용을 수화 상담사가 바로 담당 부서에 확인하면서 실시간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의 보상(사고와 고장)은 직접 상담이 가능하며 약관대출 등 대출과 상품, 손해사정은 중개안내를 받을 수 있다.
상담 가능 시간은 평일(월~금)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청각 장애우 본인이 직접 수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청각장애우 수는 35만명. 그러나 이들을 도울 전문 수화 통역사는 700여 명뿐일 정도로 환경은 열악하다. 의료, 법률 등 통역에 따라 판결이 바뀔 수 있는 영역은 물론 일상적인 생활을 도울 수화 통역사가 필요한 실정이다.
“업무지식 청각 장애우와 나눌 수 있어 매력”
다행히 최근 공공기관이나 대형 병원에서 전문 수화 통역가를 배치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고, 삼성화재도 이러한 범사회적인 흐름에 동참했다. 삼성화재 수화 상담사 중 맏언니 역할을 하고 있는 한미화 상담사는 7~8년 전에 종교활동을 하면서 수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게 계기가 됐다.
“첫 직장이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는데 손말이음센터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청각장애우를 대신해서 중개 역할을 해주는 곳이었죠. 식사 주문을 대신 해주는 등 통역을 하면서 상담사도 겸했습니다. 수화 상담사는 통역사는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업무 지식을 설명해주는 것이어서 여기에 매력을 느껴 수화 상담사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막내인 박진희 상담사도 계기는 비슷하다. 중학교 때 청소년적십자(RCY) 활동 중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에서 수화를 처음 접했다. 그때 이후 향후 진로로 수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대학에서 수화통역학과를 다니고 있다.
“제 좌우명은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입니다. 꾸준히 하면 경주에서 이긴다는 뜻이죠. 저는 하나를 꾸준히 오랜 기간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수화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조기 취업을 원해서 상담사 일을 시작했습니다.”
소통 문제로 에피소드도 많이 발생
아무래도 손짓을 통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에피소드도 자연스럽게 생기게 마련이다. 주로 소통 문제로 에피소드가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한 상담사는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수화를 사용해 상담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던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9월쯤 한 청각장애 고객이 자동차보험을 해지하고자 하는데 보험 처리했던 건을 자기 부담으로 돌리면 해지금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험금 환입을 고객에게 안내하고자 했죠. 그러나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연계 받은 제가 고객과 상담을 해보니 이분은 수화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 몸짓으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서너 번 계속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해 고객이 내용을 이해하고 보험금을 입금처리했습니다. 다음날 보험금 해지금이 고객 통장으로 입금됐는데 이를 확인한 고객이 예상보다 해지금이 많이 들어오자 다시 저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거듭했죠. 참 보람 있었습니다.”
보통 상담이 5분 내외라고 하면은 청각 장애우들과의 상담은 적게는 20분에서 많게는 4시간까지도 걸린다. 청각장애 고객과 상담할 때면 본인확인 등을 포함해 한 번에 보통 20~30분 정도 걸리고 또 두 번 세 번 전화해서 궁금한 사항을 풀어 줘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청각 장애우들은 사회적인 편견 탓에 의심이 많은 경향이 있어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어떤 사람들보다 따뜻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범사회적 관심과 교육 시스템 등 환경 개선 시급
특히 범사회적인 관심과 교육 시스템 등 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교육 체계만 살펴봐도 열악한 환경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수화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수화통역학과가 있는 학교는 전국에 나사렛대학교와 한국복지대학교 딱 두 곳밖에 없다.
수화통역학과가 생긴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현재 한 학년에 40명 정도이지만 초창기에는 10명도 안 됐다. 이들이 모두 취업에 나선다고 해도 청각장애우들이 35만명 정도인 점을 고려했을 때 통역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 셈이다.
“현재의 관심이 짧은 기간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복지대학교에 다니다 보니 참 많은 장애인을 접하게 됩니다. 이 학교는 일종의 특수학교라 다른 학생들이 장애우들을 돕는 아르바이트를 하죠. 이들 덕분에 장애우들이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학교에도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장애우들이 자유롭게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갈 곳이 제한돼 있어 많이 아쉽습니다.”
이밖에 상담할 수 있는 환경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재 보험을 비롯해 은행과 카드 등 수화 상담사 제도 도입이 전 금융권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수화 통역사 자격증도 민간 자격증에서 공인 자격증으로 바뀌어 국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막상 영상녹화나 인터넷, SNS 발송 등 상담 시스템의 여건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수화를 손쉽게 배울 수 있는 팁도 전해줬다. 각 지역의 센터나 협회에서 수화 교실을 운영하고 있어 여기를 방문하면 쉽고 재밌게 수화를 배울 수 있다. 특히 서울농아인협회의 교육 시스템이 잘 꾸려져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별로 사투리가 있듯이 수화에도 사투리가 있습니다. 또 수화는 손으로 하는 시각적인 언어이며, 손에 시선이 모이기 때문에 손을 잘 보이게 하는 게 중요하죠. 옷을 검은색이나 단색 계통으로 입으면 더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화를 배우려고 하는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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