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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초기부터 양 씨는 유력 용의자로 지목됐다. 양 씨는 A씨가 실종된 다음 날인 5월 22일 낮 12시 10분께 사상구의 한 은행을 찾아 A씨 통장에서 296만 원을 인출했다. 빨간 모자를 쓰고 온 양 씨의 모습은 은행 CCTV에 그대로 잡혔다. 양 씨는 은행 ATM에서 현금 인출을 시도하지만 비밀번호 오류로 두 번 실패했다. 은행 밖을 나갔다가 3분 뒤 돌아와 ATM에서 맞는 비밀번호를 입력해 잔액을 확인한 양 씨는 은행 창구로 가서 낮 12시 18분에 현금을 찾았다.
며칠 뒤 양 씨는 자주 가던 술집을 찾았다. 양 씨는 종업원 B씨에게 A씨 신분증과 적금통장을 건네며 은밀한 제안을 했다. 대신 A씨 적금통장을 해지한 뒤 돈을 찾아오면 일정 부분을 나눠주겠다고 한 것. 공교롭게도 종업원 B씨는 피해자 A씨와 외모가 닮아 있었다.
종업원 B씨는 동료 직원 C씨와 함께 6월 12일 오후 2시쯤 은행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분증을 제시해 비밀번호를 바꾸는 수법으로 A씨 적금통장에서 돈 500만 원을 찾았다.
양 씨와 양 씨를 도와 돈을 찾았던 B, C씨는 이후 자취를 감췄다. CC(폐쇄회로)TV 영상 기록이 있는 만큼 범인을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영상은 흐릿했고, 그 이외 단서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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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유력 용의자 양 씨의 수배 전단을 뿌리는 등 끈질긴 수사 끝에 결국 2017년 8월 양 씨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었다. 양 씨는 사건 초기부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경찰에 검거된 양 씨는 강도 혐의는 인정하지만 A씨를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 씨는 A씨가 실종된 5월 21일 오후 8시 사상역에서 신분증과 통장, 수첩 등이 든 A씨 가방을 주웠다고 설명했다. 양 씨는 발각되더라도 단순 강도 혐의로 처벌이 미약할 거라 판단하고 통장 비밀번호를 유추해 돈을 찾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피해자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조합해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던 양 씨는 말을 바꿔 피해자가 수첩에 써둔 부모의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를 조합해 통장 비밀번호를 우연히 풀었다고 설명했다. 처음 돈을 뽑고 나서도 아무 일이 없자, 술집 종업원 B씨에게 A씨의 적금을 찾아오라는 추가 범행을 제안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양 씨는 무죄가 확정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양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재판을 부산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양 씨가 A씨의 통장에서 돈을 뽑았다는 이유로 A씨를 죽였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각은 5월 22일 새벽 4시이고, 용의자 양 씨가 돈을 인출한 시각은 같은 날 낮 12시 18분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만약 양 씨가 피해자로부터 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냈다면 불과 8시간 만에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두 번이나 틀릴 이유가 없다고 봤다. 심증은 있으나 범행에 사용된 흉기 등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간접증거의 유죄증명력이 약하다고 본 것이다.
결국 부산고법 형사1부는 2019년 7월 양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은 그 해 10월 23일 양 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사건 유력 용의자가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셈이다. 양 씨 외엔 뚜렷한 혐의점을 가진 용의자가 없었던 만큼 ‘태양다방 종업원 살인사건’은 장기 미제사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을 수사한 부산경찰청은 아쉬움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 관계자는 “증거 인정을 이렇게 엄격하게 하면 장기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 점점 어려울 것”이라며 “다른 미제사건의 용의자들이 이번 판결을 보고 무죄로 풀려나는 방법을 터득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