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파괴가 난무하는 시대…송이버섯, 공존을 말하다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544쪽|현실문화
  • 등록 2023-09-06 오전 12:05:00

    수정 2023-09-06 오전 12:05: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생태인류학과 포스트휴머니즘의 관점으로 인간 사회와 세상을 분석해 ‘21세기 최전선의 사상가’로 불리는 인류학자 애나 로웹하웁트 칭의 대표작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버섯인 송이버섯을 통해 자본주의의 예상치 못한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에 걸쳐 인간이 교란(생태계를 파괴하는 것)한 숲에서만 자라난다. 인공적으로 버섯을 재배하려는 노력도 했지만 실패했다.

저자에 따르면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된 뒤 처음 등장한 생물 또한 송이버섯이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핵폭발이 일어난 이후에도 송이버섯과 같은 균류가 가장 먼저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바로 송이버섯이다. 그래서 저자는 송이버섯을 가리켜 “불안전성을 다루는 전문가”라고 말한다.

책은 이러한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일본의 미식가, 자본주의적 기업가,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정글 투사와 백인 참전 용사,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의 염소, 핀란드의 자연 가이드 등의 이야기가 우리를 곰팡이 생태와 숲의 역사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저자는 인간으로 인한 파괴가 난무하는 시대에 송이버섯을 통한 공존과 동거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사람도, 사물도 언제든 필요에 따라 버려질 수 잇는 지금, 송이버섯이 보여주는 협력과 공존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이버섯이라는 작은 유기체를 통해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본주의적 파괴의 실체,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협력과 생존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통찰력이 흥미롭다. 게다가 시적인 표현으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까지 선사한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의 교차점에서 일궈낸 놀랍도록 풍부한 탐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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