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숲속 가운데 주택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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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선 기자] 도심 한 가운데에서 농사를 짓기란 쉽지 않다. 아침에 나가 해가 진 뒤 퇴근하는 일과속에서 텃밭을 일구는 건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농사를 지을 만한 공간도 구하기 쉽지 않다. 2014년 기준 서울시 주택의 42.6%는 아파트다. 단독주택에 산다고 해도 텃밭을 일굴 만한 공간이 있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59.1%의 주택은 세들어 사는 집이다. 주인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놓고 텃밭을 일굴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텃밭을 일굴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선택받은 인간이다. 지난해 6월 결혼을 하고 입주한 집은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 주택이다. 1층은 주인집 할아버지·할머니 내외가 산다.
화목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직장생활 4년만에 서울서는 주택 구입은 커녕 전세집 구할 돈을 마련하기도 불가능했다. 싼 집을 찾아 곳곳을 찾아 헤매던 발품팔이 덕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구했다. 우리 부부가 사는 2층 집은 2평 남짓한 테라스(우리 부부는 그렇게 부른다)와 두평이 약간 안되는 텃밭이 있다. 앞서 살던 세입자 할머니는 “저기에 상추 심어서 먹으면 진짜 좋아”라고 귀띔했다.
| 지난해 여름 갖은 채소와 꽃, 잡초 등이 우거졌던 텃밭의 모습. 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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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을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늦여름부터다. 텃밭은 수년 전 주인 할아버지가 벽돌로 테두리를 만들고 수년간 묵힌 흙을 부어 만들었다고 한다. 상추와 부추, 토마토, 바질(이탈리아어로 basilico·이름부터 있어 보인다)을 심었다. 로즈마리와 라벤더도 심어 세련미를 더했다. 텃밭 바깥쪽에는 장모님이 보내주신 들꽃을 심었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 누가 먹다 남은 씨를 버렸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호박도 자랐다. 호방덩쿨은 2층 테라스 전체를 휘감았고 1층집 담벼락까지도 넘봤다.
지난해 우리 부부는 삼겹살 파티때마다 텃밭에서 상추를 조달했고, 겉절이에는 부추를 넣었다. 아내와 분위기를 잡는 날이면 직접 만든 스파게티에 바질을 얹어 기분을 냈다. 토마토는 발갛게 달린 것을 따다 후식으로 먹었다. 내 손으로 키운 작물을 재배해 식탁에 올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겨울이 왔다. 아직 남아 있던 텃밭 식물은 추운 강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동사했다.
봄이 오자 회사 선배가 제안을 해왔다. “나와 같이 텃밭을 일궈보지 않을텐가?” 물론 텃밭을 계속 가꿀 생각이었지만 취미가 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사작성을 전제한 제안이었을 터였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 도심 속 텃밭을 자랑해오던 게 후회됐다. 밭갈이를 잠시 미뤘다. ‘공부하라’는 어머니 잔소리 속에서 TV를 보며 버티기에 들어간 심정이었다.
| 3월 13일 갖은 식물들을 걷어내고 비료와 배양토를 뿌렸다. 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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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씨앗은 심었냐?” 날이 따뜻해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3월 중순 노랗게 말라버린 식물들을 걷어내고, 흙을 뒤엎었다. 비료회사에서 운영하는 사이트(kgfarmmall.co.kr)에서 텃밭 비료세트를 구매했다. 텃밭 흙의 두께가 얕아 지력이 떨어지기 쉬워 영양분을 보충할 필요가 있어서다. 비료를 써도 되나 걱정스러웠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유기질 비료는 화학비료가 아닌 식물에서 추출한 유기질 원료와 미생물이 포함돼 있어 퇴비나 다름 없단다. 밭을 뒤엎은 지 일주일이 되는 때에 비료를 뿌리고 하루 뒤 씨를 뿌렸다. 이번엔 상추와 미니배추, 그리고 지난해 무릎 높이 이상으로 자란 바질 줄기 끝에서 채집해놨던 씨앗을 심었다.
열흘 정도가 지나 3월말이 되자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바질부터 싹이 올라왔다. 아기가 활짝 손을 펼친 것처럼 귀엽다. 상추와 배추를 심은 곳에서는 아직 새싹이 제대로 돋지 않아 잡초와 구별이 쉽지 않다. 이제는 잡초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때가 가까이 왔다는 얘기다. 도시농부되기는 이제부터다.
| 싹을 틔워 땅을 뚫고 올라온 바질 새순들. 너무 옹기종기 붙여 심은 듯하다. 최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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