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재판 비포앤애프터

  • 등록 2014-02-14 오전 6:00:00

    수정 2014-02-14 오전 6:00:00

[남궁 덕 칼럼]‘김승연 재판’비포앤애프터

기업인들을 잠못들게 했던 배임을 보는 법원 시각이 그전보단 한층 명증해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파기환송심 판결에 묻어난 변화의 모습이다. 부실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회사에 수천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로 기소된 김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은 2012년 8월 바로 김 회장을 법정구속시키면서 ‘보이지 않는 원칙’으로 자리잡아온 ‘재벌 엄벌주의’가 꼭지점을 찍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재판부는 배임도 일부만 인정하면서 “개인적 치부(致富)를 위한 전형적인 범행과 차이가 있어 참작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구자원 LIG 그룹 회장도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물론 대기업 회장이라고 해서 지나치게 가볍거나 과도한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 판결에 상식이라는 본질이 담겨 있어야 제대로 된 법치라고 말할 수 있다. 시대정신이란 이름으로 판단의 잣대를 줄자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면 곤란하다.

재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일제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경제민주화라는 여론이 총수 양형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는데, 이제 제자리를 찾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론재판의 광풍이 잦아든 것같다”고 평가했다.

이번 재판의 결과가 최태원 SK 회장, 이재현 CJ 회장, 이호진 태광 그룹 회장 등 남아 있는 대기업 오너 회장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벌써부터 관심이다. 판결은 독립적인 판단을 하는 담당 재판부의 몫이지만, 향후 줄줄이 대기 중인 오너 기업들의 재판은 김승연 회장의 경영복귀 후 행보가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게 기자의 생각이다.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보면 오너 공백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 어느 기업은 마치 번호표를 뽑아가듯 정기적으로 회장 면회를 간다. 중요한 결정은 이래저래 미뤄진다. 사업의 씨를 뿌리는 게 오너회장이기 때문에 그들의 몸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기관차가 서 있는데 객차 혼자 달려나갈 수 없다. 한화(타임월드)는 13일 제주국제공항 출국장면세점 입찰에서 신세계 등 강자를 제치고 사업자로 선정됐다. ‘김승연 효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선 ‘재벌’ ‘총수’란 단어가 기업을 나쁘게 보는 프레임으로 악용된다. 그렇지만 재벌(財閥)은 ‘재계에서 세력있는 자본가, 총수(總帥)는 ’다 거느리는 장수‘라는 뜻이다. 재벌총수는 한마디로 자본을 모아 책임 경영한다는 뜻. 오늘날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키운 원동력이다. 김 회장 부터 명함에 ‘한화그룹 총수’ 라고 자랑스럽게 새기고 다녔으면 좋겠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어떻게 수행하겠다는, 소위 ‘김승연 스타일’의 대 사회 소통방안을 내놨으면 좋겠다. 김 회장 재판 이후 한국 사회에 ‘재벌 3.0’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1세대 창업자들이 황무지에서 기업가정신의 노래를 부르며 잠재돼 있던 한국인의 근면성을 일깨운 게 ‘재벌 1.0시대’, 그 묘판을 키워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세운 게 김 회장, 이건희 회장, 정몽구 회장 등이 주역인 ‘재벌 2.0’시대다. ‘재벌 3.0시대’는 세상과 소통하면서 사랑받는 기업문화를 창출하는 거다. 지금 첫 단추를 꿸 때다.<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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