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이데일리 윤도진 특파원]
얼마 전 기자가 한 대기업 중국 지사의 차를 탔을 때 일이다. 배기량 3000㏄가 넘는 BMW 차량이 갑자기 차량 앞으로 끼어들자 30대 초반의 중국인 기사는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격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는 이내 창문을 닫고 조용한 목소리로 한탄했다. "또 군용차구만."
| ▲ 무장경찰(WJ) 번호판을 단 포르쉐 SUV. 군경의 권력을 등에 업으려 `짝퉁` 번호판을 다는 이들도 있다.(사진: 망역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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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인 즉 중국의 군용차량(번호판에 軍-군대, 空-공군, 海-해군, WJ-무장경찰 등 기관 종류에 따라 표시되어 있다) 중에 비싼 차가 너무 많다는 것. 벤츠며 아우디에, 수제 명차로 알려진 마세라티까지 봤단다. "군인이 저런 차를 타고 전투라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그는 "내 세금인데 저렇게 낭비되고 있다"고 끊임없이 불만을 토해냈다.
이는 1949년 신(新)중국 건립 이후 62년간의 공산당 통치가 낳은 일면이다. 당과 정부 지도층이 고급관료화되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것은 오랜 일이지만 이를 보는 중국인들의 반감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창당 90년을 맞은 중국 공산당이 이대로 100주년까지 맞을 수 있겠냐는 술렁임도 심심찮게 보인다.
◇ 중국 뒤덮은 `紅色 물결`..그 뒤에는
지난 15일 중국 전역에서는 `젠당웨이예(建黨偉業)`라는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저우룬파(周潤發), 류더화(劉德華) 등 우리나라에도 익숙한 배우를 비롯해 중화권 스타 108명이 동원된 블록버스터. 이 영화는 1911년 신해혁명부터 1921년 상하이에서 열린 첫 전국대표대회로 중국 공산당이 결성되기까지를 그렸다.
이 영화는 공산당 창당 9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고, 당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제작된 이른바 `홍색(紅色) 캠페인`의 대표작이다. TV에서도 공산 혁명을 다룬 홍색(紅色)드라마 60여편이 방영되고 있고 혁명가요인 홍가(紅歌) 경연대회도 곳곳에서 열린다.
중국인 대다수는 이런 홍색 캠페인을 자연스럽게, 또는 자랑스럽게까지 받아들이고 있다. 젠당웨이예가 닷새만에 300만명 가량의 관객을 끌어모은 것이 그 방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현실에 맞지않고 도가 지나치며 오히려 반동회귀적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공산당이 다시 10년뒤 창당 100주년을 맞으려면 캠페인보다는 `실질적 민부(民富), 균형 발전`을 통한 사회 통합이 절실하다는 게 중국 지식인 사회의 중론이다.
| ▲ 지난 6일 공산당 창건 90주년을 맞이해 제작된 90㎡크기의 당기가 베이징 천안문 광장앞에서 전시됐다.(사진: 신화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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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질적 民富` 없이 100주년 맞을 수 있을까신분을 밝히기를 꺼린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의 한 사회과학 분야 교수는 "정부의 홍색 캠페인은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의미보다는 현재 직면한 사회적 분열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하려는 프로파간다(선전)의 성격이 강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시 말해 90년 역사를 지킨 중국 공산당의 숙제는 기치로 걸었던 `인민의 평등`을 실질 경제 측면에서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당 내부에서도 논란이 인다. 개혁 성향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 4월 홍콩에서 "중국의 개혁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며 "개혁의 걸림돌은 우선 봉건사회의 잔여사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문화혁명을 추종하는 `홍색` 세력"이라고 했다. 이념적 선전에 기대는 방식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얘기다.
장밍(張鳴) 런민대 교수는 "원 총리가 잇따라 제기하고 있는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는 중국 정치에 미묘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고 분석했다.
1921년 13명의 대표와 53명의 당원으로 시작한 중국 공산당은 8026만여명의 당원을 거느린 거대 세력이 됐다. 세계는 중국 공산당이 또다른 10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 어떤 역사를 써갈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