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바로 지금, 한국사회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쓴다’는 데 뜻을 같이한 11명의 소설가가 있다. 이름하여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이들 모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일, 보통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다. 이, 당대 현장을 다룬다. 삼, 발품을 팔아 사실적으로 쓴다. 판타지는 쓰지 않는다.
책은 이들이 내놓은 첫 번째 작품집이다. 비정규직, 학습지 교사, 여행사 신입사원, 택배 청년 등. 현실이 녹록지 않은 주인공들의 처절하고도 핍진한 소설들이 모였다. 저자들은 모두 직장인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김의경의 ‘순간접착제’에서는 이십대 청년 ‘나’와 ‘예은’이 등장한다. 코로나19로 아르바이트생 고용 시간을 줄이겠다는 마카롱 카페 사장의 말에 그날로 그만둔다. 그러나 새로 구한 삼각김밥 공장 아르바이트에서도 두 사람은 일흔의 할머니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한다.
장강명의 ‘간장에 독’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여행사가 배경이다. 주원규의 ‘카스트 에이지’ 주인공은 코인 투자로 빚을 지고 배달과 택배 상·하차 일을 하는 스무 살 청년이다. 그는 이 일이 힘에 부친다. 첫 박스를 들어 올리는 순간, 앞이 캄캄하고 숨이 턱 막힌다.
이들은 소소하게 보일지라도 개인의 고난을 그리는 것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힘을 모색하고자 한다.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대공황의 대책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진 못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그 사이의 숭고함을 그려냈듯 현실을 묘사하는 것 자체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취지다.
동인의 좌장 격인 장강명은 ‘기획의 말’을 대신해 “나는 문학에 힘이 없는 게 아니라 힘 있는 문학이 줄어든 것 아닌지 의심한다”며 중산층·노동의 몰락 등 전대미문의 현상 앞에서 “원인도 대책도 모르지만, 최대한 고통스럽다는 사실만큼은 동시대 작가의 눈으로 쓰고자 했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