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협이 만든 '옥상옥' 규제…64조 시장 리걸테크, 뒤처지는 韓

[갈길 먼 AI변호사]
변협 AI 광고 규칙, 법 위의 규제
새로운 리걸테크 서비스 나올 때마다 징계 반복
이의제기 집중하느라 기술발전 도태
  • 등록 2024-12-09 오전 4:30:49

    수정 2024-12-09 오전 4:30:49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협회 인증 없이 변호사들이 인공지능(AI) 광고를 할 수 없다는 규칙을 제정한 것에 대해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리걸테크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법률 AI의 주권을 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64조 시장 먹거리 떠오른 리걸테크, 뒤처지는 韓

8일 업계에 따르면, 변협이 AI 광고 규칙을 제정한 것은 불필요한 추가 규제로, 국내 기업의 리걸테크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미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통과된 AI기본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률 AI 서비스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틀이 마련되거나 마련중인 상황에서, 변협이 새로운 규제를 추가함으로써 이중 규제 문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는 ‘AI 대륙아주’ 서비스 중단을 ‘제2의 로톡 사태’로 보고 있다. 변협은 법률서비스 플랫폼 ‘로톡’과 8년간 법적 분쟁을 벌인 끝에 사실상 로톡 승리로 일단락됐지만, 그 사이 ‘로톡’은 경영에 큰 피해를 입었다.

2014년 ‘로톡’이 등장한 이후부터 변협은 로톡의 서비스가 특정변호사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며 변협 규정을 위반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AI 대륙아주’ 서비스의 중단을 초래했다. 새로운 리걸테크 서비스가 한국에서 등장할 때마다 변협이 징계를 내리고, 이에 대한 이의제기에 집중하는 사이 기술 발전은 뒤처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이 분쟁에 휘말리는 동안, 해외 리걸테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비즈니스리서치 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리걸테크 AI 시장 규모는 2021년 81억 달러(한화 11조 1200억 원)에서 2027년 465억 달러(한화 63조 84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는 변호사를 검색하고 광고하는 마켓플레이스 단계를 넘어, 다양한 법률 서비스 분야에서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이루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랙슨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업체 수는 약 9100곳에 달하며, 전체 투자 규모는 59조 원에 이른다. 리걸테크 산업에서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글로벌 유니콘 기업은 15개로, 그 중 10개는 미국에 위치해 있다.

고객에게 변호사를 연결해 주고 구독료를 받는 서비스, 전문 변호사를 파견하고 수임료의 10%를 취득하는 서비스, 법률 문서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서비스, 판례나 규제 정보를 빅데이터 기술로 수집하고 분석해 전 세계 정부 부처 및 기관에 제공하는 서비스 등 다양한 리걸테크 서비스가 존재한다.

리걸테크 업계 관계자는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는 리걸테크라는 법률 비즈니스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했다”며 “한국에서 일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 제정은 국가 경제에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변호사 일자리 뺏는 것 아냐…이용하면 효율↑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은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하여 변호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서비스를 활발히 도입하고 있다.

법률 분야에서 AI 활용을 통한 업무 효율 증대 효과는 여러 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블룸버그 법률 리서치 서비스 ‘블룸버그 로’에 따르면, 법률 업무에 AI를 활용할 경우 업무 시간을 40~60%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네소타대학교가 지난해 발표한 ‘AI를 활용한 법률업무 퀄리티 개선 및 시간 단축 효과’라는 논문에 따르면, AI를 활용한 결과 소장의 퀄리티가 평균 5% 향상되고, 소장 작성 시간은 평균 24% 단축되었으며, 계약서 퀄리티가 8% 향상되고 작성 시간은 32% 단축되는 성과를 거뒀다.

익명을 요구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내 경험과 AI를 활용하면 마치 어소 변호사 100명이 있는 것처럼 일을 할 수 있다”며 “변호사가 AI를 사용하면 업무의 깊이가 더해지고 속도가 빨라진다”고 전했다.

이번에 서비스를 중단한 ‘AI대륙아주’ 개발사인 넥서스AI 이재원 대표는 변호사들과 함께 시장을 키워나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법적인 제약 없이 소화제나 진통제를 사 먹어도 의사의 일이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이 AI 리걸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법률서비스의 영역이 정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포털에서 기초적인 법률 지식을 검색하다 보면 변호사 광고와 연결돼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법률 서비스의 벽이 높고 용어도 어려운데, AI를 잘 활용하면 그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협과 리걸테크 업계가 싸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며 “의료기기가 잘 만들어진다고 해서 의사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변호사들이 기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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