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은 립스틱보다 진하다

△필갤러리서 '마인드풀니스' 전 연 작가 김성진
극사실주의로 입술만 클로즈업해 그려와
물감과 붓으로 화면에 띄운 화장한 입술
외양으로 내면을, 색감으로 촉감을 감춰
"보이는 게 전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어"
  • 등록 2021-12-22 오전 3:30:00

    수정 2021-12-22 오전 3:30:00

김성진 ‘유혹’(2021), 캔버스에 오일, 116.7×80.3㎝(사진=필갤러리)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흔치 않은 입술이다. 립스틱에 ‘절인다’고 해도 저토록 진하게 물들일 순 없단 뜻이다. 극적인 효과는 입술만 빼고 얼굴을 가린 쿠킹호일이 냈다. 슬쩍 흘린 끈적한 액체가 윤기와 점성을 보태는 중이니. 핏빛 같은 저 붉은 입술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브러시가 아닌, 작가 김성진(49)의 붓이 만든 거다.

작가는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입술만을 그려왔다. 대학 시절부터라니 족히 30년이다. 지금과 비교해 예전 작업의 특징이라면 광택을 빼버린 입술과 그 언저리 배경까지 내보였던 거랄까. 뺨의 온기라든가, 얼굴에 걸친 머리카락이라든가. 촛불을 끄거나 입을 맞추는 행위가 돋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게 갈수록 입술로만 승부를 거는 듯하다. 덕분에 쿠킹호일이란 ‘장치’가 들어간 ‘유혹’(Temptation·2021)은 진짜 특별한 유혹이다.

‘입술화가’로 불리는 작가의 작품에는 대부분 화장한 입술이 둥둥 떠 있다. 하지만 ‘화장’이란 게 그렇듯, 저 입술은 태생적으로 감추는 게 있다. 외양으로 내면을 감추고 색감으로 촉감을 감춘다. 짙은 화면으로 그보다 더 짙을 삶도 감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입술’인가. 누구는 그 입술을 들여다보며 ‘관능’에, ‘에로티시즘’까지 말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작가의 속말은 다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걸 말하고 싶어서”란다. 정작 진실은 내면의 다른 내용일 수 있다고. 인체 중 유일하게 속살이 겉으로 나온 그 입술 때문에, 한 사람은 마음을 전할 수도, 한 사람은 마음을 들킬 수도 있단 얘기다. 앙 다물어버리면 셔터를 내려버린 듯 ‘철벽’이 돼 입 벌려 말하는 것보다 되레 더 많은 말을 하기도 한다. 간혹 작품명으로 빼내기도 한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마음 챙기기)를 이렇게 읽어가면 되겠다.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필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마인드풀니스’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29일까지.

김성진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2021), 캔버스에 오일, 300×200㎝(사진=필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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