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세돌은 감동이었다

  • 등록 2016-03-14 오전 5:00:00

    수정 2016-03-14 오전 5:33:54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휴일 벌어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승부였다. 이미 판세는 기울었는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알파고가 원망스러웠다. 격차가 줄어드는 것 같아 초조하기까지 했다.

바둑 좀 둔다는 주변 기자는 “알파고가 꼬장을 부린다”고까지 말했다. 승산 없는 싸움에는 깨끗이 승복하는 게 인간의 예의다. 컴퓨터는 이런 승자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오직 승리를 위한 수 탐색뿐이었다.

패배를 앞둔 알파고가 1시간 가까이 지리하게 물고 늘어져도 이세돌 9단은 동요하지 않았다. 얼굴에 짜증이 비칠만 한데도 요동치지 않았다. 이러다 저번처럼 또 역전되는 게 아닌가 불안감마저 들었다.

역시나. 이세돌 9단은 승부사였다. 다잡은 승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알파고를 끝까지 몰았다. 승리를 위한 경우의 수가 거의 제로(0)에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알파고는 돌을 던졌다.

이세돌 9단의 불계승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첫 승이었다. 늦었지만 기뻤다. 현장의 취재진들은 모두 환호했다. 바둑인들은 만세를 불렀다.

인공지능이 만능이 아니란 게 다행스러웠다. 결점이 많은 인간처럼 인공지능도 약점이 있다는 데 안도감이 들었다. 부지불식 간에 3번의 패배를 당했지만, 이세돌 9단은 인간의 희망이었고 바둑계의 기둥이었다.

“다 틀렸다”며 포기할 만도 할 텐데 이 9단은 끝까지 승부에 매달렸다. 이세돌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됐다.

이세돌 9단
사실 거의 모든 이들이 이세돌 9단의 패배를 예상했다. 실낱같은 희망이야 있었지만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봤다. 15만 집단 지성이 모인 알파고는 강력한 철벽같았다. 이 9단은 벽 앞에 무릎 꿇은 무력한 천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9단은 써볼 전략은 다 써봤다. 첫 대국은 성급했다는 평가였지만 알파고와 강대강으로 맞붙었다. 화려한 공격과 방어가 있었다.

두번 째 대국에서는 신중한 수로 붙었다. 알파고의 도발에도 응하지 않고 신중하게 형세를 읽어갔다. 그럼에도 졌다. 세번 째 대국은 막판에 힘을 써보려했지만 격차만 벌어졌다. 보는 이들은 자포자기 했다. 이세돌 9단이 내리 질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이세돌 9단은 보란듯이 이를 뒤집었다. 단 한 판 이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숱한 패배 속에 승리를 엮어내기 위한 그만의 의지는 숭고했다. 감정없는 기계 앞에 초조한 민낯을 자주 보인 그였지만, 인간의 감성과 직관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보여준 한 판이었다.

이 9단은 어제만큼은 한국 바둑의 최고수 정도가 아니었다. 인간 직관의 대표주자이자 희망이었다. 데이터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섯번 째 대국은 이 9단의 일생에 축제 같은 한 판이 됐으면 한다. 승패에 대한 부담 없이 이 9단이 보여줬던 승리에 대한 갈망과 끈기만 있으면 된다. 절실함이 데이터로 표현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세돌 9단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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