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한 골프장의 캐디 A씨가 상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상사의 갑질에 고통받아 힘들어하던 A씨는 결국 지난해 9월 골프장을 그만두던 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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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선택 5개월만에 ‘직장 괴롭힘’ 인정…‘근로자’ 아니라서 징계 곤란”
지난 2017년 골프장에 캐디로 입사한 A씨는 1년간 근무하다 퇴사했다. 이후 2019년 7월 재입사해 지난해 9월까지 근무했다.
평소 A씨는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골프장 관계자로부터 ‘네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느리다.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등 외모 비하가 담긴 질책을 들어 인격적 모욕감을 느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A씨의 일기장에는 생전 그가 겪은 괴로움이 담겼다.
A씨는 “또다시 주눅이 들었다. 자존감이라는게 존재하는 걸까. 다른 회사로 옮겨야 하나 수없이 고민이 된 날”이라며 “캡틴은 내가 상처받는 거에 대해 생각 안 하고 나만 보면 물어 뜯으려고 안달인 것 같아”라고 적었다.
A씨는 “제발요. 사람들 다 감정 있구요. 출근해서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마세요”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해당 글은 20여 분 만에 관리자에 의해 삭제됐고 작성자인 A씨도 게시판에서 강제 퇴장 조치됐다.
이후 A씨는 친언니에게 “회사에서 사람 취급 못 받고 있어서 멘탈 다 나가서.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 걱정 마 언니”라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고 일주일 뒤 A씨는 한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A씨의 언니는 지난해 9~10월 홀로 시위를 벌이고 고용노동부에 해당 사건을 신고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기소는 0.36% 불과…“고용부 신고 확대해야”
해당 사건을 두고 지난달 9일 노동부는 골프장의 캡틴이 A씨에게 행한 일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냈다.
A씨의 사건은 특수고용직노동자가(특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노동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 적용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해당 골프장은 입사자에게 ‘산재적용제외 신청서’를 일괄 제출받았다. 이로 인해 고용부가 A씨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임을 인정했어도 회사가 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 현행법상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골프장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부가 해석하고 있는 내용”이라며 “형식적인 계약관계만 보고서 ‘근로자가 아니다. 다만 골프장 안에서 벌어진 괴롭힘 행위는 맞다’는 상당히 모순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이후 2019년 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총 2130건(월평균 355건)이다. 2000년(5823건·월평균 485건)과 비교하면 37%나 증가한 수치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고용부에 신고할 수 있지만 사건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용 의원은 “법에 처벌규정이 없고 법 적용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법 시행 후 접수된 전체 사건 7953건 중 송치사건이 94건으로 1.2%에 불과하다. 이중 기소의견은 29건으로 전체 사건 대비 기소율은 0.3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의 느슨한 처벌 규정 탓에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대다수라며 법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조항을 신설해 고용부 신고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신고하더라도 회사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게 뻔한 경우는 특수고용직이나 간접노동자들, 용역, 하청, 파견 등의 고용자들”이라며 “노동청이 직접 조사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행정적인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