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으로 옮겨 탄 '지상파 재송신' 분쟁

SBS, 유료방송사업자에 "월드컵 재송신료 올려달라" 요구
유료방송사업자 "채널별 재송신협상 이미 끝났다"
근본적으로 재송신 관련 정부 가이드라인 빨리 나와야
  • 등록 2014-05-23 오전 12:48:07

    수정 2014-05-23 오전 8:55:00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2014 브라질월드컵을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지상파 재송신 분쟁이 다시 터졌다. 월드컵 중계권을 획득한 SBS가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추가 수수료를 요구하고 나선 이유에서다. 이미 재송신 협상이 끝난 상황에서 추가로 낸 전례도 한 번도 없었던 터라, 유료방송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22일 방송업계에 따르면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브라질 월드컵 중계권을 획득한 SBS는 케이블방송(SO)·IPTV를 대상으로 월드컵 재송신 대가 산정 협상에 나섰다. SBS로부터 일부 중계권을 재구매한 MBC, KBS도 조만간 협상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에 대한 해석 달라..협상 난항 예상

유료방송사업자는 지상파방송사와 재송신 계약을 체결한다. 지상파 방송 콘텐츠를 자신의 가입자에게 재송신하면서 대가를 내는 것이다. 현재 KBS1과 EBS는 의무 재송신 채널로 지정돼 이를 제외한 채널은 유료방송사업자로부터 가입자당 월 280원의 재송신료(CPS)를 받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SBS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의 재송신 대가는 양사가 별도 협의하기로 계약했다고 주장하면서 재협상 협상에 나서면서다. 계약서 제6조(재송신에 따른 양사의 책임) 1항에 따라 기존 CPS와 별도로 대가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유료방송업계에 따르면 각사마다 체결한 재송신 계약서에는 월드컵 등에 재송신 대가를 별도로 협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제6조는 “SBS가 프로그램을 재송신하는 데 문제없도록 한다”는 내용과 함께 단서에 “단 월드컵 등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 재송신 등에 대해 별도로 협의한다”는 ‘양사 간의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IPTV업계 관계자는 “여기서 협의란 뜻은 방송프로그램이 불미스런 사태로 중단되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이지 비용 산정을 다시 한다는 건 아니다”고 했다.

재송신 비용에 대한 건 별도 항목에 있다. 여기에는 SBS채널을 재송신하는 대가로 280원으로 산정한다는 내용만 있을 뿐 개별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은 없다.

결국 SBS가 1분기 광고 수주가 부진했고 2분기에도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독점적 확보로 높아진 2014년브라질 월드컵(7500만 달러) 중계권료를 감당하기가 벅차 내놓은 방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료방송 업계 고위 임원은 “채널별로 CPS계약을 끝마친 상황에서 프로그램 별도로 재계액을 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라면서 “방송법에서 월드컵은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SBS가 오히려 거꾸로 달려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월드컵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협상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면서 “연말 채널 재송신 협상 때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고질병 지상파 재송신 계약..이번 기회 가이드라인 착수해야

지상파 재송신 계약은 매년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방송 송신의 문제와 저작권의 문제라는 틀을 근본적으로 깨고 새로 접근해가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뒤 해결책 마련을 검토했지만 흐지부지됐다. 사업자 간 계약 관계일 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게 기본 정부 판단이다.

그러나 지상파 재송신을 단순히 프로그램 저작권료로만 보기는 무리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국내에서 지상파를 안테나로 직접 수신하는 비율이 7%에 불과한 상황에서 유료방송사업자의 재송신 기여분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방송법 시행령에 따라 국민 전체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도록 명시돼 있는데, 유료방송을 통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번 CPS협상은 지상파 3사의 힘의 논리에 의해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지상파방송이 보편적 서비스가 아닌 만큼 사업자 자율로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지상파방송사가 케이블사업자 간 공정한 협상이 가능하도록 ‘연합 협상 및 사전 담합 금지’ 등으로 힘의 논리를 막기 위한 최소한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여전히 지상파 재송신 문제에 대해서는 가이드라인 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지상파가 보편적 서비스로 규정되지 않은 만큼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 격인 FCC가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고 사업자 자율로 맡기고 있지만, 국내는 다른 상황인 만큼 CPS 협상 관련 정책결정자가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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