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22년 5월22일 새벽 5시1분께.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오피스텔에서 20대 여성이 피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다. 여성은 귀가하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뒤따라온 30대 남성이 ‘돌려차기’로 여성의 뒤통수(후두부)를 찼다. 정신을 잃은 여성은 남성에게 끌려갔다. CCTV가 잡히지 않은 사각지대였다. 8분 뒤 남성은 오피스텔을 빠져나갔다. 사라진 8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 사건 현장이 담긴 CCTV.(사진=jt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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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지인과 약속이 있었고 여느 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흥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로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전치 16주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머리와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게다가 어쩌다 병원에 실려온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보고서야 연유를 알았다. 그러나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성의 기억을 날린 범인은 30대 남성 A씨였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A씨는 여성 뒤에서 돌연 나타나 돌려차기로 여성의 머리를 공격했다. 경호업체에서 일하는 건장한 남성의 일격을 받은 여성은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쓰러진 여성에게 남성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여성이 정신을 완전히 잃자 남성은 여성을 둘러업고서 사라졌다. 건물 CCTV는 이후로 8분 동안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놓쳤다. 사각지대로 들어간 것이다. 8분이 지나고 남성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모습만 잡혔다.
남성은 얼마 가지 않아 붙잡혔다. 유년기부터 강도와 강간, 폭행 등 혐의로 소년원을 드나든 전과 18범이었다. 이번 범행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석 달 만에 저지른 것이다. 붙잡히고서는 피해자가 남성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피해자는 긴 머리에 굽이 있는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헷갈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붙잡힌 남성의 휴대전화를 뒤져보니, ‘강간’을 검색한 기록이 나왔다. 피해자가 쓰러진 채 발견된 당시 모습과 연관이 있었다. 상의가 들린 상태였고, 바지는 벗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재판에 넘겨진 남성에게 적용된 혐의는 살인미수이다. 남성이 성폭행 혐의는 거부하고, 여성은 기억을 잃은 상황에서, CCTV 같은 증거가 부족한데다, 수사 당시 증거를 날려버린 탓이 컸다.
1심은 남성에게 징역 12년과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명령했다. 검찰이 20년을 구형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A씨는 형이 무겁다고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옷이 타의로 벗겨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항소심 결과는 이달 재판을 마지막으로 이르면 내달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피해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오죽하면 ‘12년 뒤, 저는 죽습니다’는 제목의 글을 썼다. 폭력적인 성향의 A씨가 12년 형을 복역하고 출소하면 40대에 불과한데, 보복이 두렵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