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수합병(M&A) 업계 최대어로 꼽히는 현대건설 매각 개시여부에 대해 금융권과 건설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매각 개시시점과 향후일정 등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큰 M&A 변수만 해도 4가지가 넘어, 마치 4차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복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첫번째 변수(X)는 현대건설 옛 사주(현대그룹 등)의 M&A 참여여부, 이른바 구(舊)사주 문제가 꼽힌다.
9개 채권은행중 주관은행인 외환은행은 지난 7일 주주협의회 결과를 밝히면서 "구사주 문제는 채권금융기관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며 "매각주간사를 선정해 M&A를 진행하면서 최선의 처리방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부분의 은행들이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은행간 `공감`에 대해선 온도차가 있다는 시각이다.
핵심은 약 50%인 채권단 매각제한지분중 외환은행(12.42%)과 거의 대등한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11.17%)과 우리은행(10.62%)의 태도다. 채권단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기타 지분까지 합하면 산업은행과 우리은행 지분율은 각각 14.70%와 14.39%에 달한다.
산업은행은 예전처럼 구사주 문제를 들어 눈에 띄게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 관계자는 "굳이 3월에 매각주간사를 선정할 필요가 있느냐"며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또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수차례 구사주 문제에 대해 `국민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던 만큼, 매각에 돌입하려면 새로운 명분도 필요하다.
우리은행은 입장표명을 유보해 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구사주 문제는) 회의를 더 해볼 것"이라고만 밝혔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이 언론보도를 통해 현대건설 매각 필요성을 일부 언급했었지만 채권은행간 합의를 전제로 한 원론적인 수준이었다.
두번째 변수(X)는 정부의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다. 이는 새 정부 출범직후 새롭게 부상한 변수다.
인수위를 거쳐 국정기획수석으로 발탁된 곽승준 수석은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산업은행이 보유한 현대건설, 대우조선해양 등의 지분매각은 지주회사가 출범한 이후에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건설·대우조선 M&A '올스톱'(1월8일)」
곽 수석은 더 나아가 "금융회사가 자회사로 비금융회사인 일반 기업, 즉 산업자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고 말했었다. ☞「인수위 `금융지주사, 비금융 자회사 허용` 검토(1월17일)」
곽 수석은 공기업 민영화와 대운하 등 대형 국정과제를 총괄하고 있다. 채권은행 관계자도 지난 7일 "구사주 문제 이외에도 산업은행의 상황이 여러가지로 복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변수(X)는 시장상황과 경쟁매물 추이다.
채권은행들이 현대건설과 대우조선해양중 어느 M&A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현대건설의 매각개시 시점은 달라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인 변수(X)가 있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77년부터 1992년까지 15년이 넘게 현대건설의 CEO를 지낸 만큼, 채권은행들이 청와대의 `의중`을 알아볼 최소한 수개월의 시간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있다.
또 4월 총선이후 국책은행장 등 교체인사설이 돌고 있어, 김창록 총재가 올 11월 임기만료되는 산업은행이 `움직일 상황이 못된다`는 관측도 있다.
이밖에 잠재인수자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 정몽준 회장이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도운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과 정 회장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전격적으로 힘을 합쳤다.
물론 정치적인 문제가 경제적인 이슈로 전이될 경우, 현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정 회장과 현대중공업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IB(투자은행)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범현대가(家) 정상영 명예회장의 KCC를 측면 지원하는 형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대중공업이 KCC를 지원하는 대신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 전후를 확보하게 되면 현대상선을 주축으로 하는 현대그룹의 경영권도 위협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반면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이 몸담았던 현대건설 인수의지를 가장 확실하게 밝히고 있으며, 2~3년전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다. 다만 5조원이상의 자금조달은 과제로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이 KCC와 손잡고 현대건설(000720) 인수전에 뛰어든다면, 유리하든 아니면 정치적 부담 때문에 역차별을 받든 M&A 양상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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