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그릴 줄 아냐?"…권지안 향한 악플, '사이버불링' 전시로

갤러리 선 '사이버불링' 그룹전
곽재선문화재단 '공존' 시리즈
권지안 등 韓中 작가 9명 참여
설치 미술 작품·미디어아트 등
  • 등록 2024-08-19 오전 12:00:01

    수정 2024-08-19 오전 12:00:01

작가 권지안이 1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갤러리선에서 열린 ‘사이버불링(CYBER BULLING)’ 전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사과는 그릴 줄 아냐?”. 가수 겸 미술 작가 권지안(가수 활동명 솔비)은 미술계 입성 초기 온라인상 악성 댓글과 마주해야 했다. 왜 미술 비전공자도 아니면서 붓을 들고 작가 활동을 하느냐는 부정적 시선과 함께 뒤따른 조롱 섞인 비난이었다.

해당 악성 댓글은 권지안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의외의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권지안은 그에 대한 답변을 미술 작품으로 대신했고 해당 작품은 사이버폭력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시 개최로까지 이어져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서울 중구 KG타워 지하 1층 갤러리 선에서 곽재선 문화재단 주최로 진행 중인 ‘사이버불링’(사이버폭력) 전(展)에 내걸린 설치 미술 작품 ‘비욘드 디 애플’이 권지안이 악성 댓글에 응수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작가 권지안이 1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갤러리선에서 열린 ‘사이버불링’ 전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권지안은 총 26개의 사과 모양 알루미늄 부조(浮彫)를 제작해 각기 다른 색을 입혔다. 각 부조에는 A부터 Z까지 알파벳을 부여해 악성 댓글을 남긴 이들에게 전하는 언어로 승화시켰다. 사이버불링 피해자들이 자책을 끝내고 힘을 내어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길 바라는 마음도 작품에 녹여냈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16일 갤러리 선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권지안은 “사이버불링 가해자들이 키보드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저 사과를 보고 마음이 순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품을 만들었다”고 작업 취지를 밝혔다.

“‘악성 댓글 달지 마세요’라는 말보다 작가답게 작품으로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기술적인 것보다는 나만의 방식과 시선을 담아 다양성 제시라는 미술의 아름다운 면을 강조하고 싶기도 했다.”

작가 권지안이 1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갤러리선에서 열린 ‘사이버불링’ 전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이번 전시에서 권지안은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픽토리얼 리스폰스’를 함께 선보인다. 미디어 아티스트 곽인상, 디자이너 서지현과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요 키워드 또한 사과. 키보드로 입력한 메시지가 사과 모양 그래픽으로 변환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권지안은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작품을 통해 사이버불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고, 동시에 작가는 어떤 반응이 나오더라도 작품으로 답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곽재선문화재단의 ‘공존’ 시리즈 3번째 전시에 해당하는 ‘사이버불링’ 전은 권지안을 비롯해 곽인상, 서지현, 김길웅, 김창겸, 이돈아, 이경민, 손 스안(중국), 샤엔(중국) 등 9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그룹전이다. 사이버불링을 주제로 다룬 다양한 설치 작품과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이어진다.

권지안이 전시 기획자 전혜연에게 작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사이버불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한 것이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다. 앞서 지난 6월 서울 성북구 아트노이드178에서 ‘사이버불링’ 전 첫 번째 전시를 열었으며 11월에는 국회에서도 같은 전시를 진행한다. 전시의 연장선으로 온라인상에서는 쇼츠 공모 등을 진행하는 ‘스탑 사이버불링’ 캠페인도 전개 중이다.

작가 권지안이 1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갤러리선에서 열린 ‘사이버불링’ 전시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권지안은 “전시와 캠페인을 통한 문화 운동이 사이버불링 범죄에 대한 대응책이 만들어지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이버불링’ 전에 참여할 계획이며 조형 작품을 추가로 작업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사이버불링의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직장인 등 우리 주위에 있는 이들 또한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자들이 혼자 마음속으로 끙끙 앓지 마시고 전시를 보며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더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사이버 세상에 유토피아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이버불링 피해자였던 권지안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미술 활동을 통해 치유와 새로운 자아 찾기를 이뤄냈다. 앞으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선한 영향력과 긍정 에너지를 널리 전파하고자 한다. 권지안은 내달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2024’에 참여할 예정이며 연말에 개최할 개인전 준비도 지속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보여드리며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 ‘비욘드 디 애플’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는 작업도 이어갈 것이다. 미술을 통해 고통받는 분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

‘사이버불링’ 전시에 참여한 이돈아 작가의 렌티큘러 작품 ‘드리밍 버터플라이’(사진=노진환 기자)
‘사이버불링’ 전시에 참여한 김길웅 작가의 ‘빅 러브’(사진=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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