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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지난달 마지막 주에 열린 ‘10월 미술품 경매’. 혹시나 했던 기대감이 차갑게 식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찰 신호가 연이어 감지되면서다.
경매 출품작 중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소품이 몰린 초반에는 그런대로 ‘활발한 응찰과 낙찰’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미술품 경매의 하이라이트라 할 주요 대작이 몰린 중반으로 들어서자 거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모름지기 경매의 재미라면 응찰자들의 불붙는 경합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장면은 많지 않았다. 한두번 응찰로 ‘손쉬운’ 낙찰이 마무리되거나 그나마 응찰 자체가 없는 ‘유찰’로, 서둘러 다음 순서로 넘어가기 일쑤였다. 한마디로 작품을 사겠다고 적극적인 의사를 표하는 이가 많지 않더란 얘기다.
어느 한 경매에서만 생긴 이변도 아니다.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옥션의 ‘제169회 미술품 경매’나 하루 뒤인 26일 열린 케이옥션의 ‘10월 경매’나 딱히 어디가 낫다고 말하기 애매하니까. 그렇다면 출품작에 문제가 있었나. 그것도 아니다. 김환기·박서보·이우환·김창열·윤형근·이건용·김구림·이강소 등, 두 경매가 단골이자 인기 레퍼토리로 삼는 근현대 작가들의 수작이 골고루 나섰더랬다. 불과 1년 남짓, 아니 올봄까지만 해도 ‘닥치고 컬렉션’에 줄줄이 입성하던 작가와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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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도 없이…추정가 넘긴 낙찰작 손에 꼽힐 정도
서울옥션에 나섰던 이우환의 ‘조응’(1996, 추정가 3억 2000만∼5억원), 이건용의 ‘드로잉의 방법 76-1-2011’(2011, 추정가 6000만∼9000만원)이 이날 유찰됐다. 김구림의 ‘음양 15-S. 33’(2015, 추정가 7700만∼1억 2000만원)도 새주인을 찾지 못했으며, 화제작으로 관심을 끈 권옥연의 ‘(나무의 정신 Esprit de Bois) A’(1965∼1968, 추정가 8000만∼1억 5000만원)도 유찰 대열에 끼어야 했다.
그나마 새주인이 챙긴 작품들도 그다지 모양새가 좋진 않다. 낙찰가를 드라마틱하게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단 얘기다. 추정가를 넘어서 낙찰된 작품이라곤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 서울옥션에선 최욱경의 ‘홍도의 인상’(1984)이 높은 추정가 8000만원을 넘겨 9500만원에, 노은님의 ‘무제’(2011)가 높은 추정가 3000만원을 넘겨 3800만원에 낙찰됐다. 케이옥션에선 권옥연의 ‘여인’(1985)이 높은 추정가 3000만원을 넘긴 3500만원, 박영선의 ‘누드’(1957)가 높은 추정가 2000만원을 넘긴 2300만원까지 낙찰가를 끌어올렸다. 1억원 이상의 고가작품 중에선 김창열의 ‘물방울’(1976)이 있다. 케이옥션에서 높은 추정가 9000만원을 웃돈 1억 200만원을 부른 응찰자에게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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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두각을 나타낸 작가라면 유영국이다. 서울옥션에 나온 붉은톤의 ‘워크’(Work·1977)가 높은 추정가 4억원을 넘어선 4억 8000만원에, 케이옥션에 나온 푸른톤의 ‘워크’(1981)가 높은 추정가 4억 5000만원에 못 미치는 3억 1500만원에 각각 낙찰되며 저력을 뽐냈다.
두 경매사가 지난 10월 경매에서 낙찰한 총액은 80억여원. 채 100억원어치가 되질 않는다. 한창 미술시장이 뜨거웠던 지난해 10월, 양사의 낙찰총액은 225억원(서울옥션 152억원, 케이옥션 73억원)을 찍었더랬다.
사실 미술시장을 파고든 찬바람은 10월 만의 사정도 아니다. 여름 내내 조짐이 있었단 소리다. 이 지점에서 지난 7∼9월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을 분석한 내용을 들여다볼 만하다. 한국미술사감정협회가 집계한 올해 3분기 낙찰총액은 439억 4100만원. 지난해 3분기에 쓴 953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46%). 낙찰률 역시 10% 가량 빠졌다. 출품한 6404점 중 3880점을 팔아 60.59%를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낙찰률은 70.05%(출품수 8071점, 낙찰수 5654점)였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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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국제적인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여파”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9월 초 ‘프리즈 서울’ ‘키아프 서울’로 쏠림현상이 나타난 점, “MZ세대의 미술소비 열풍이 꺼지고 거품이 빠지는 중”도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미술계에선 프리즈와 키아프가 몰고 온 ‘특수’가 내부 상황을 되레 덮어버렸을 거란 얘기가 번져 나온다. 특수가 국내 미술시장에 영양분으로 기여하지 못한 탓이란 지적도 있다. 반면 좀더 긍정적인 시선도 있다. “프리즈·키아프로 인한 일시적 피로감”이란 분석이다. “6500억원 안팎의 거래를 끌어내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뿐”이란 거다. 다만 어떤 변수에도 ‘부침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술시장’은 당분간 기대키 어렵다는 우려감이 번진다.
3분기 낙찰총액 1위 작가는 쿠사마 야요이(63억원), 2위는 이우환(20억 600만원)이다. 다만 낙찰률에선 50%대(쿠사마 55.56%, 이우환 56.86%)를 보여 2점 중 1점은 유찰된 것으로 읽힌다. ‘낙찰가 상위 10위권 작품’에 쿠사마는 22억원에 팔린 ‘호박’(2004)을 비롯해, 색깔별 ‘호박’을 4점 올리며 상승세를 유지했다. 박수근의 ‘노상의 사람들’(1962)이 8억원에 팔리며 3위, 박서보의 ‘묘법 No.941120’(1994, 5억 3000만원)이 8위, 이우환의 ‘조응’(1996, 5억 2000만원)이 9위 자리에 섰다. 고미술품 중에선 유일하게 심사정의 ‘지두절로도해도’(연도미상, 7억 5000만원)가 올랐고, 해외 작품으론 사라 휴즈의 ‘그리너 글래스’(Greener Glass·2015, 7억원), 무라카미 다키시의 ‘컬러풀 플라워’(Colorful Flower·2019, 4억 7000만원)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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