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바라던 세상이냐”…임금을 암살하려 한 자객 [그해 오늘]

범인 조선 개혁 군주 정조 암살 시도 후 도주
사건 12일 후 창덕궁서 암살 시도하다가 체포
정조 아버지 사도세자 모함한 집안이 암살 주도
  • 등록 2024-07-28 오전 12:01:02

    수정 2024-07-28 오전 12:01:02

[이데일리 김형일 기자] 1777년 7월 28일. 경희궁 존현각 위에 암살범이 발견됐다. 누군가 궁중에 암살단을 난입시켜 임금을 살해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도주한 범인들을 잡히지 않았고, 임금은 거처를 경희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야 했다.

영화 '역린' 속 배우 현빈의 모습.(사진=영화 '역린' 스틸컷)
암살범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던 임금은 조선 후기 개혁 군주이자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22대 왕 정조. 그는 시전상인(국가가 조성한 상점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독점 판매 권한인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누구나 자유로운 장사를 할 수 있는 통공 정책을 시행하는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재위 기간 끊임없는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존현각 암살 시도 사건은 영화 역린에서도 다뤘다. 정조(현빈)는 자신을 살해하려는 을수(조정석)를 칼싸움 끝에 제압한다. 이후 역모를 꾀하던 어영청(왕을 호위하는 군대) 대장 구선복(송영창)에게 자신의 보검에 흐르는 피를 보여주며 “이것이 너희가 바라는 세상이냐”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그러나 역린은 역사적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암살범은 존현각 암살 시도 사건 12일 후인 8월 11일 창덕궁에서 또다시 암살을 시도하다 체포됐다. 암살 계획과 관련된 모든 사실도 이때 드러나는 데 정조의 외할아버지인 홍계희(노론 벽파 대표 인물)의 손자 홍상범이 추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존현각 암살 시도 사건의 발단은 정조의 할아버지인 조선 21대 왕 영조 재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조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영조는 서자 출신으로 적자(정실부인의 자식)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통성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신하들과 학문을 연마하며 국정을 협의하는 경연을 자주 열었다. 그만큼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에게 엄격했다.

하지만 사도세자는 영조와 맞지 않았다. 영조의 엄격한 훈육 탓에 사도세자는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다. 정치적인 색깔도 달랐다. 영조는 노론, 사도세자는 남인과 소론의 지지를 받았다. 이때 홍계희는 사도세자의 행적을 과도하게 부풀려 영조에게 고했고, 결국 사도세자는 쌀을 보관할 때 쓰는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주검이 됐다.

홍계희 집안은 홍계희가 이미 죽은 상태였지만,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불안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홍계희의 아들 홍지해는 홍인한, 정의겸 등과 함께 등극을 반대하다가 유배되기도 했다. 이에 홍계희 집안은 의전군(사도세자의 5남)을 추대하는 암살을 계획했고 실패로 끝나면서 목숨을 잃었다. 일례로 홍상범은 책형(시체를 저자에서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했다.

한편, 존현각은 일제강점기 헐어서 치워졌기 때문에 실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경희궁을 그린 서궐도안(보물 제1534호)을 살펴보면 현재 남아있는 숭정문과 그 동쪽에 있는 보조편전인 흥정당의 앞쪽 2중 건물의 가장 끝 출입문 옆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조 어진.(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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