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명 목숨을 앗아가다…인천 인현동 화재참사[그해 오늘]

1999년 경찰·공무원 비호 속에 무허가 영업
비상구 없고 창문도 막아둬…단속 무풍지대
화염 속에서도 '돈 내라'며 손님 탈출 막기도
  • 등록 2022-10-30 오전 12:03:00

    수정 2022-10-30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99년 10월 30일 오후 7시께. 인천 중구 인현동의 한 건물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내부 수리 중이던 지하 노래방에서 발생한 불로 발생한 화염과 유독 가스가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벽을 타고 건물 전체로 퍼졌다.

1층 고깃집에 있던 시민들은 연기와 불길을 보고 재빨리 탈출했고, 3층 당구장 사람들도 화염과 유독가스를 확인한 후 창문을 깨고 탈출해 모두 목숨을 건졌다.

1999년 10월 30일 화재가 발생했던 인천 인현동 호프집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2층에 위치한 주점(호프집)에서 발생했다. 해당 호프집은 사건 발생 7개월 전 안전기준 미달로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음에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입구엔 ‘내부 수리중’이라고 써붙인 채 불법영업 중이던 호프집 내부는 학교 축제를 끝내고 뒤풀이를 즐기거나 생일 축하를 위해 모인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손님들은 올라오는 연기에 출입구로 몰려갔으나 호프집 측에서 “술값을 내고 가라”며 출입문을 막았다. 그 사이 호프집 내부엔 엄청난 유독가스가 유입됐다. 일부 손님들은 화재 발생 직후 캄캄한 연기 속에서 ‘비상구 등’을 향해 이동했다. 하지만 비상구 등 아래에 있던 문은 화장실 문이었다. 소방점검을 위한 눈속임용 등이었다.

해당 호프집은 창문도 모두 석고보드로 막아버린 상태였기에 손님들의 탈출구는 출입구가 유일했다. 결국 56명이 죽고 78명이 큰 부상을 입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사상자 대부분은 고등학생이었다.

참사 후 사상자들과 유가족들은 ‘불량학생’이라는 또 한번의 2차 가해를 받아야 했다. 결국 피해 학생들의 같은 학교 학생들이 이 같은 사회적 시선을 반박하는 성명서를 준비했으나 학교 측의 반대로 발표하지 못했다.

인인현동 화재 참사 15기주였던 2014년 10월, 한 유족이 희생자 추모비를 손으로 만지며 슬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의 근원은 사회의 책임방기였다. 해당 호프집이 불법영업을 버젓이 할 수 있었던 배경엔 경찰 및 담당 공무원들과의 유착이 있었다. 호프집 사장 정모씨는 관내 경찰관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단속을 피해갔다.

정씨는 이 같은 비호 속에서 인천지역 10대 고등학생들 상대로 집중적인 영업활동을 했다. 학교 앞에서 전단지나 할인권을 나눠주기도 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절대 단속되지 않는 술집’으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의무경찰을 관리하던 방법순찰대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씨 호프집 수리를 위해 소속 의경 3명에게 지원 근무를 명령하기도 했다. 경찰관 중엔 이씨 소유 집에서 공짜로 산 경우도 있었다.

화재 직후 잠적했던 정씨는 사고 발생 3일 후 검거됐다. 호프집 사장 정씨와 관리사장 이모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정씨와 이씨는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3년 6월형이 확정됐다.

당시 불법영업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경찰관들과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고 수사 대상이 됐다. 검찰은 경찰 11명, 시·구청 공무원 7명 등 모두 19명을 재판에 넘겼다.

경찰은 이 같은 상황에서 ‘고위층 비호의혹’을 제기한 고등학생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긴급체포를 해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화재참사 과정에서 경찰들의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자 경찰청장을 전격 경질했다.

인천시교육청은 화재 참사를 기리기 위해 2004년 참사 현장 인근의 옛 초등학교 부지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을 건립하고 추모비를 설치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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