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골프)미스 샷 쓰나미

  • 등록 2009-09-29 오전 10:25:03

    수정 2009-09-29 오후 2:39:33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그건 진짜 쓰나미였다. 바다 저 멀리 깊은 곳에서 일어난 단층의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하는 지진해일, 멀쩡히 보이던 것들을 모두 휩쓸어 버려 수많은 생명과 건물, 나무와 돌 등 주변 환경을 완전히 뿌리뽑는 엄청난 힘…바로 그 쓰나미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안정된 스윙 자세를 보이던 그녀가 어찌 순식간에 필드하키 선수로 변신할 수 있는가 말이다.

라스베이거스 게임 중이었고 그녀는 승승장구, 어떤 파트너를 만나도 돈을 따고 있었다. 그녀가 잘 할 때가 많았고 못할 때도 파트너가 멋지게 커버를 해 준 덕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13번홀. 잘 맞은 듯한 티 샷이 왼쪽 벙커로 직행했고 가 보니 턱이 제법 높았다. 파트너가 “턱이 높네”하고 한 마디 던졌지만 그녀는 우드를 들었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어 온 플레이 흐름 상 이번에도 멋지게 탈출할 시나리오라고 굳게 믿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운은 운일 뿐, 마음 속으로 우겨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턱에 맞고 수직으로 솟구쳐 오른 공은 다시 벙커로 떨어져 내리는 상황만 모면했을 뿐 다시 러프에 걸렸다.

스탠스가 매우 불안해 보였다. 턱 높다고 한 마디 툭 던졌던 파트너가 자신의 턱을 크게 벌린 채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다시 우드를 고쳐 잡았다. 캐디가 클럽을 무엇으로 바꿔줄까 묻기도 전에 백스윙이 시작되고 다운스윙… 볼은 또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바로 앞에 툭 떨어졌다. 풀이 너무 길었고 클럽 헤드가 그 위에 떠 있는 공을 맞추지 못한 채 아래를 쓸며 지나갔기 때문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 곧장 볼 떨어진 곳으로 갔고 다시 그 우드로 스윙을 했다. 이번에는 뒤 땅, 그리고 다음에는 토핑…. 보다 못한 파트너가 “천천히 치라”며 그녀를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주위 한번 둘러보지도 않고 경주마처럼 곧장 볼만 보고 가서 다시 스윙, 그리고 또 미스 샷으로 이어지는 형국이었다.

결국 그녀는 그 홀에서 셀 수 없는 타수를 기록한 채 기진맥진해 버렸다. 그렇다. 미스 샷 쓰나미의 종말은 고갈된 체력, 허탈한 마음, 그리고 뻥 뚫린 지갑이다.

돌아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턱 높은 벙커에서 우드를 잡을 수는 있다. 단번에 탈출해서 온 그린 시키고 싶은 욕심을 부린 것이다. 분명한 판단 착오이며 실수지만 그럴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처음 미스 샷 이후 대처하는 자세, 여기서 진정한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드러난다. 고수는 반드시 한 템포 늦춘다. 다시 우드 샷을 하고 싶다 하더라도 일단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자신보다 앞에 있는 동반자가 먼저 샷을 하게 되는 상황이 있더라도 충분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안정을 찾는다.

하지만 고수가 되지 못한 자들은 방금 전의 미스 샷을 조금이라도 빨리 잊겠다는 의지를 활활 태우며 급하게 다시 스윙한다. 클럽을 바꾸려는 생각도 없고 뒤로 물러나 크게 한번 심호흡할 생각도 없다. 그저 휘두를 뿐이다.

미스 샷이 혼자 다니지 않고 두 놈, 세 놈씩 친구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바로 이런 서두름 때문이다. 성질 급한 사람이 골프 못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골프 치면서 성격이 느긋해졌다는 사람을 간혹 만난다. 이런 사람은 분명 미스 샷 쓰나미의 아픔을 극복한 사람일 것이다. 골프가 무슨 마법처럼 갑자기 성질을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잘 치려면, 그러니까 미스 샷을 줄이려면, 적어도 미스 샷 쓰나미를 피하려면...한 템포씩 끊어주는 요령이 필요하다.

템포를 끊는 방법은 각자 찾아내기 나름이다. 한 다섯 걸음쯤 걸어나갔다가 다시 원위치를 하든지, 다시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클럽을 교체하든지 말이다.

마음 급해질 때 한발 물러나는 그 기막힌 타이밍과 자신만의 템포 늦추기 방법을 터득하면 느긋해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실수도 줄어들고 실력도 늘어난다.

고수 치고 성질 급한 사람 없다. 적어도 미스 샷 한 직후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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