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골프를 시작했다는 소식에 주변에서는 ‘어서 필드에 나오라’고 성화다. 봉팔이라는 인간에 대한 반가움보다 108mm 홀(컵)보다 더 크게 구멍 뚫릴 그의 지갑을 노린 외침이다. `지갑을 그냥 주겠다`고 눙쳐 넘기지만 봉팔씨는 주변에서 자신을 부를 때마다 ‘어디 두고 보자’를 다짐한다.
새벽잠을 뿌리치고 연습장으로 가는 것도 그 다짐의 연속이다. 남들 모르게 칼을 갈아 지갑을 노리던 주변인들을 화들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속셈이 그를 벌떡 일어나게 만든다. 축구면 축구, 달리기면 달리기, 운동이라면 남들 하는 것 이상으로 해왔다는 자신감도 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하지만 봉팔씨는 지금 왼쪽 팔꿈치에 파스를 두 개나 붙이고 끙끙거린다. 초록색 매트로 얇게 화장해 푹신함을 가장한 콘크리트 바닥을 열심히 두들겨 댄 덕분이다. ‘무조건 열심히’를 외치며 뒤땅도 치고 공 옆구리도 때리고 팔꿈치에 힘들어갈 일은 다 한 듯 하다. 칼을 갈긴 했는데 세워서 가는 통에 날카로워지기는 커녕 날이 온통 이빨 빠진 형국이다.
당장 골프채를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든다. 운동신경 없다는 소리 들은 적 없는데 도대체 이 작은 공 때문에 왜 이리 속을 썩혀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이것 저것 주워 들은 것도 많고 나름 골프 책도 읽어 무장했지만 몸과 맘이 완전 따로 노는 데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답답하다.
더 미칠 노릇인 것은 진짜 그만둬야겠다 싶을 때 한번씩 공이 산뜻하게 맞아 나간다는 것이다. 열일곱 홀 내내 드라이버면 드라이버, 아이언이면 아이언, 마음 먹은 대로 가는 것이 하나 없더니 짐 싸서 가기 직전인 18번 홀에서 티 샷이 기가 막히게(남들 보기에는 그저 적당히) 맞아 날아갈 때는 ‘어쩌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드라이버 샷이 뱀처럼 뚤뚤 기어 레이디스 티잉 그라운드 옆에 멈춰서고, 그토록 자신 있던 7번 아이언 샷은 왼쪽 오른쪽으로 난초를 치다가 뒤땅에 토핑으로 위아래 춤을 춰대기 까지 하는 바람에, 천신만고 끝에 그린에 올랐더니 10m 롱 퍼팅이 쑥 들어갈 때는 또 어떤가. 트리플 보기 퍼팅이었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잊어줄 수 있다.
클럽 내다 팔아야지, 신발도 누구 줘 버리고… 어쩌고 저쩌고 중얼거리던 말이 쑥 들어간다. 마누라는 그걸 두고 “골프가 당신을 꼬신다”며 놀려대지만 봉팔씨는 단연코 자신 속에 숨어 있는 골프 재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빛이 반딧불마냥 깜빡깜빡 거리다가 어디론가 숨어버린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 것 같아 자신은 100m 달리기 속도로 전력질주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모터가 돼주어야 할 골프 재능은 깜빡 거리다 못해 사라지기까지 해버리니 이것 또한 미칠 지경이다.
결국 봉팔씨 골프는 미친, 아니 적어도 미치기 직전의 골프다. 팔팔했던 삼십 대를 훌렁 보내고 마흔 넘어 골프채 잡은 것부터 미친 짓인지도 모른다. 오십 넘어, 육십 넘어 채 잡은 것보다는 덜 미친 걸까?
마누라는 또 중얼거린다. 남은 인생 즐겁게 보낼 친구 하나 더 얻었다 생각해라, 그렇게 힘만 가지고 치려고 하니 공이 도망 다니지, 그립이 그게 뭐냐… 등등. ‘내가 진짜,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하루 빨리 비기너 탈출한다’. 봉팔씨 팔뚝에 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대로 공을 때릴 수는 없다. 아직 욱신거려서 파스 붙여둔 팔뚝에 힘까지 들어가면 자기만 죽을 맛이라는 것쯤은 이제 잘 알기 때문이다.
심호흡 한번 하고… 그 동안 잘 맞았던 샷을 한번 생각해본다. 전에 친 미스 샷, 앞으로 남은 거리, 뭐 그런 것 안중에 없이 그냥 볼만 있는 대로 째려보면서 클럽을 냅다 휘둘렀을 때였던 것 같다. 그 때는 친구들 따라잡겠다는 생각을 할 정신도 없었다. 마음 비우고, 힘 빼고…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뺄셈에 성공했을 때였다.
그래, 해보자. 봉팔씨는 또 다짐한다. 100번 안 맞다가 한 번 맞았을 때의 그 기분, 그 한 순간을 위해… 언젠가 그 기분이 ‘열 홀 보기 플레이하다가 버디할 때’쯤으로 바뀌겠지.
세상의 모든 봉팔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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