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80년대 세계는 정보화 물결을 탔다. 중후장대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전자 산업이 부상했고, 그 핵심에는 반도체 기술이 있었다. 산업화를 이룬 한국 경제도 중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전자 산업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문제는 반도체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도체 자립은 한국 경제의 존립 문제였다.
| 삼성전자 64K D램.(사진=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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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1983년 11월 64K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이 양분하던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린 쾌거였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지 9년 만이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한 지 9개월 만이었다.
삼성전자의 집념과 국가와 계획, 국민의 염원이 어우러져 이룬 성과라서 더 값졌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 육성 장기계획(1982∼1986년)을 수립하고 전자 산업에서 반도체 부문에 기업의 투자를 촉구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반도체 산업을 이렇게 회고한다.
‘언제나 삼성은 새 사업을 선택할 때는 항상 그 기준이 명확했다. 국가적 필요성이 무엇이냐, 국민의 이해가 어떻게 되느냐, 또한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등이 그것이다. 이 기준에 견주어 현 단계의 국가적 과제는 ‘산업의 쌀’이며, 21세기를 개척할 산업혁신의 핵인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미·일을 맹추격했다. 1984년 10월 256K D램, 1986년 7월 1M D램, 1988년 2월 4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선진국과 기술 격차를 점차 좁혀갔다. 1990년 8월 16M D램에서는 격차가 거의 없었다. 이후 삼성전자의 독주가 시작했다. 1992년 64M, 1994년 256M, 1996년 1G, 2001년 4G 수준의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삼성전자 클린룸 반도체 생산현장(사진=삼성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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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삼성전자는 반도체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로써 한국은 정보통신(IT)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자원이 없는 한국이 경제를 일으키려면 무역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반도체 자체 개발과 상용화는 무역 강국으로 우뚝 서는 발판을 다졌다. 그 초석을 다진 게 바로 삼성전자의 64K D램이었다.
문화재청은 2013년 8월27일 삼성전자가 개발한 64K D램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가운데 보존할 가치가 특별히 인정돼 문화재 등록을 결정했다. 보존은 경기 용인시 기흥구 삼성전자 공장에 돼 있다. 삼성전자가 199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64M D램도 2020년 1월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