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을 향해 곧잘 날아가던 아이언 샷이었는데 갑자기 옆으로 족히 50m는 떨어져 있는 벙커에 볼을 처박지 않나, 드라이버 샷 잘 맞았다고 다행이다 싶었는데 90야드를 남기고 털퍼덕 뒤땅을 때리지를 않나…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 말을 들은 직후였다. “어, 자기랑 한 편이네….”
핸디캡이 들쑥날쑥한 네 명이 모인데다 죽기살기로 ‘지갑 열기’할 일도 없다면서 라스베이거스 게임을 하자고 하길래 흔쾌히 오케이한 뒤였다.
전 홀에서 가장 잘 친 사람과 꼴찌한 사람이 한 편이 되고 2, 3위가 한편이 되어 그 홀의 팀별 스코어를 곱해 숫자가 적은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스코어를 더하는 것보다 곱하는 것이 우열 가리기가 쉬운 방식이다. 4타와 6타, 5타와 5타일 때 더할 경우 10타로 동률이지만 곱하면 24와 25로 우열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암튼 그 게임을 하기로 했고 초반에는 별 신경 쓰지 않은 채 골프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 명만 계속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필이면 제일 연장자였다. 번갈아 다른 사람들과 같은 편이 되는데 그 때마다 그 양반 편이 잘 못했다. 그러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이번에는 자기랑 한 편이네….”
분명히 이기자고 하는 소리이고 뭔가 기대감이 묻어서 날아온 말이었다. 그날 필드에 들어서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비집고 들어섰다. 동반자 중 최고 연장자이고 팀 경기인데도 유독 혼자만 이기지 못하니 나랑 같은 편일 때라도 이기게 해줘야지… 뭐 그런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고개를 흔들어도 마찬가지였다. 저도 모르게 그립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몸이 경직됐다.
뒤땅과 퍼팅 미스가 이어졌고 결국 그 분은 여전히 이기지 못했다. 모처럼 그 분이 잘 플레이 해서 상대방 중 한 명을 이겼을 때도 내 골프가 죽을 쑤면서 팀 성적을 갉아 먹어 버렸다. 희한하게도 그 다음 홀 그 분과 헤어져 다른 사람과 한 편이 되면 내 골프는 날개를 달았다. 일부러 미스 샷을 낼 수 있는 실력도 아니니 참 미칠 노릇이었다.
결국 라운드가 끝난 뒤 한 소리를 들었다. “거 참.. 나랑 한 편 되기 싫으면 그렇다고 말을 할 것이지 어떻게 나랑 편 먹을 때만 무너져 그래?” 웃음 머금은 눈에 장난기 섞인 말투였지만 받는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런데 또 이상했다. 그 말이 “이번에는 자기랑 한 편이네….”보다 10배는 가볍게 들렸기 때문이다. 받는 마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그냥 말만 두고 보면 라운드 중에 들었던 말이 훨씬 부드러웠고, 격려의 의미까지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래서 프로골퍼들 중에는 레슨을 위한 라운드가 아닌 이상 내내 아무 말 하지 않다가 끝날 때쯤 한 마디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던가. 라운드 중에 뭔가 말하면 그거 신경 쓰느라 그날 라운드는 완전 망치기 때문이란다.
하여간 라운드 중 동반자에게 던지는 말들이 그날 골프를 살릴 수도, 혹은 죽일 수도 있는 신기한 양념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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