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A씨는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 B씨의 촌지 요구에 항의했다가 1년간 교사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A씨는 당시의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담임교사가 조회시간에 ‘스승의날에 책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난 정말 순진하게 책만 건넸다. 일부 아이들이 건넨 책 사이에 ‘봉투’가 껴있는 걸 몰랐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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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이 말을 듣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후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담임 B씨는 그때부터 A씨를 볼 때마다 ‘낚싯배’ 얘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후 A씨는 아버지로부터 “너희 담임이라는 사람이 사무실로 전화해 낚싯배를 빌려달라고 얘기를 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이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예민한 학창시절 피해 기억, 수십년 지나도 선명
교사를 꿈꿨던 A씨는 그날 이후 꿈을 포기했다. A씨는 졸업 후에도 B씨가 잊히지 않았다. “가끔 그 인간이 뭐하고 사는지 찾아봤다. 2010년대 초반 정년퇴직을 했더라. 의례적이지만 훈장을 받았더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A씨처럼 다른 의미의 학교폭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더글로리’ 공개 후 학창 시절 교사들로부터 상처받았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관련 게시글엔 수십년 전 자신이 당했던 피해를 토로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고위 공무원인 B씨는 지금도 초등학교 시절 꿈을 꾼다. “그때 그 시절, 대부분의 집이 형편이 어려웠고 우리집도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는 집도 그만큼 많았다. 당시 30대 초였던 담임교사는 돈을 제때 못 내는 아이들에게 ‘거지새끼들’ 등 온갖 쌍욕을 다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야구방망이, 목검, 걸레봉 등 무시무시했던 체벌도구들
과거 체벌은 합법이었다. 하지만 당시 일부 교사들은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아이들에게 가했다. 교사의 기분에 따라 폭행의 강도는 달라졌다. 야구방망이, 목검, 걸레봉은 물론 맨손, 주먹을 사용하는 교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40대 변호사 C씨는 “중학교 시절 한 교사는 아이들 눈밑을 세게 꼬집어 눈물 자국의 피멍을 만들고 그걸 보며 혼자 웃었다. 이유는 아이들이 즐거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기억했다.
C씨는 “그 시절 일부 교사들의 행동은 지금 기준으로는 교육차원이라고 볼 수 없는, 그냥 상해·폭행 정도의 중범죄도 적지 않았다”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닌 일부 교사들에 의해 이뤄진 무자비한 폭행, 지금 기준으로는 교직에서 쫓겨나는 수준을 넘어 중형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체벌금지 운동이 있었다. 가수 신해철씨는 2006년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폭력은 전염되면 점점 강해지고 효과는 떨어진다. 폭력 외의 대안을 먼저 모색해야 한다”고 체벌금지 필요성을 주창했다. 결국 2010년대 경기도교육청을 시작으로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체벌은 금지됐다. 당시에도 일부 교육단체를 중심으로 ‘제대로 된 훈육이 불가능해진다’며 체벌금지에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