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최대 8배↑, 한푼도 못받을 판”…벼랑 끝 경동시장 상인들

시장 임차인위, 대주주 '배임' 혐의 고소
임대보증금 인상…2년 새 총 144% 증가
대주주 단기대여금 729억 회수 가능성↓
신탁담보 탓에 확정일자 미정…법 사각지대
  • 등록 2021-03-09 오전 11:00:20

    수정 2021-04-21 오전 10:14:29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의 상인들이 벼랑 끝에 섰다. 최근 2년 사이 임대보증금이 천정부지로 뛰었지만, 경동시장 자체가 수백억원대 대출로 경영부실 위기에 놓여 있어 보증금을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형편이다. 안 그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상인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시장 대주주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경동시장, 재무상태 부실로 ‘감사 의견 거절’…‘배임’ 혐의 고소

8일 경동시장 임차인관리위원회(위원회)에 따르면 위원회 대표 5인은 경동시장 대주주인 이모씨와, 경동시장의 자회사 경동에이플랜 이사 서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지난달 15일 서울 북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서울 동대문경찰서로 이첩돼 현재 경제범죄수사5팀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부터 제기동까지 이어지는 경동시장은 강북 최대의 재래시장이다. 보통 재래시장은 상인들이 점포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경동시장 전체는 이씨 소유의 주식회사다. 최대주주인 대표이사 이씨(61.25%)와 특수관계인 이모씨(10.0%), 경동장학재단(28.75%)이 3개 건물(본관·신관·별관)을 보유하고 있다. 위원회는 200여명의 임차인으로 이뤄졌다. 급격하게 오른 보증금 사수를 위해 기존 상인회와 별개로 만들었다.

상인들이 불안에 떠는 이유는 시장의 재무상태가 불안정해 보증금을 못 받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재무제표상 경동시장의 지표는 부실 그 자체다. 경동시장이 작년 4월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2019년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자산은 약 890억원, 부채는 약 734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9%, 6.7% 늘었다. 부채가 문제인데, 금융권 단기차입금은 약 583억원에 달하고, 상인들이 맡긴 보증금은 약 137억원이다. 자기자본(약 156억원) 중 유형자산(약 146억) 비중이 93.6%에 달해 사실상 자산이 부동산(토지·건물)뿐이다.

2019년도 감사보고서 기준 경동시장이 대주주와 자회사에 제공한 단기대여금은 누적 729억원에 달한다. 이에 2005년부터 경동시장의 회계감사를 맡은 이촌회계법인은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이촌회계법인은 “단기대여금 회수가능성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해 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감사 의견 거절은 주식매매 정지, 관리종목 지정, 상장폐지 사유다.

상인들이 고소까지 하게 된 것도 대주주의 과다한 금융 대출로 인한 경영 부실과 수년째 정상적인 상환이 없어 회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어서다. 위원회는 “특수관계인 자금 대여는 회계 원칙상 단기대여금으로 1년 안에 상환하는 것을 전제로 허용하는 것인데 2014년 대규모 대출 이후 매년 25억~30억원가량 단기대여금이 증가하고 실질적인 원금 상환이 이뤄진 적 없다”며 “심지어 2019년에는 상인들 임대료를 인상해 대주주 대여금으로 가져간 돈은 총 86억7000만원으로 예년보다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경동시장의 지하상가에서 생선을 팔던 상점들이 있던 곳이지만, 급격한 임대보증금 인상을 견디지 못한 상인들이 떠나면서 현재는 텅 비어 썰렁한 상태다.(사진=이소현 기자)
“보증금 최대 8배 인상”…신탁담보 탓에 임대차보호법 ‘사각지대’

천정부지로 오른 보증금 인상도 상인들을 짓누른다. 코로나19 위기와 함께 급증한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난 상인들로 현재 450여개 상점 중 100여개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위원회에 따르면, 경동시장은 2019년 가을부터 2020년 여름까지 지난 1년간 임대차계약 갱신을 통해 상가 보증금을 최대 8배까지 올렸다. 2018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 의무기간을 최대 10년까지 줘야 하지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상인들이 스스로 떠난 것이다.

이 시장의 상가 임대보증금 총액은 2018년 기준 약 90억원, 2019년 약 137억원이다. 아직 2020년도 감사보고서가 나오지 않아 위원회에서 자체 갱신 계약서를 취합해 집계한 결과 작년 말 기준 보증금 총액은 22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증금 총액을 220억원이라고 간주하면, 2년 사이 총 144.4%(130억원) 오른 것이다. 위원회 측은 “신규로 상가에 입주한 임차인은 갱신 인상이 아니라 인상률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며 “갱신 계약자 중에는 개인별로 최소 3배에서 최대 8배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상인들은 경동시장이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따르지 않고 매년 1년 단위로 계약 조건을 갱신했으며, 제시한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상가를 비우라는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경동시장 공시지가 기준으로 받았던 금융기관 대출액이 한도에 이르러 추가 대출이 불가능해지자 2019년 가을부터 계약 만료로 갱신해야 하는 상가들을 하나씩 협의해 급격한 인상을 관철했다”며 “이를 거절하면 1개월 안에 가게를 비워야 해 상인들이 개별 소송에 나서는 것도 역부족이었고, 일방적 조건이지만 장사를 계속하려면 빚을 내 보증금을 인상하는 계약을 부득이하게 체결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경동시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는 김정의(가명) 사장은 “13.09㎡(약 4평) 규모의 광장노점은 보증금이 3360만원에서 2억1360만원으로 1년 사이에 무려 1억8000만원(535.7%)이 오른 곳도 있었다”며 “코로나로 상인들 모두 장사에 어려움을 겪어 부담이 크지만 먹고 살아야 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고, 보증금까지 못 받을까 불안하고 두렵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상인들은 보증금 지급 순위에서 뒷전이다. 경동시장이 은행에서 더 많은 돈을 끌어오기 위해 2011년 담보신탁으로 전권을 넘기고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확정일자를 받아 보증금에 대한 대항력을 획득해야 하지만, 경동시장과 신탁회사가 동의해주지 않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상인들은 단순 임대차 보증금 채권자로, 경동시장이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면 뒷순위로 밀려 보증금을 돌려받는게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위원회 변호를 맡은 오창훈 법무법인 미리내 대표변호사는 “임대인이 금융권을 통해 받은 담보대출 한도가 꽉 차서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급격히 올려 받고, 이를 상환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자에게 계속해서 대여하는 것은 배임의 소지가 대단히 높다”며 “앞으로 민사소송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장 측은 이러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경동시장의 업무를 총괄하는 서모씨는 “2017년에도 45일 동안 배임 혐의로 세무조사도 받았는데 회계정리 잘못으로 나왔다”며 “대여금은 회계상 문제로 조만간 정리될 것이다. 조사하면 다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경동시장 건어물 상가에 손님들이 없어 한적한 모습이다.(사진=이소현 기자)


<경동시장 임대차 당사자 분쟁> 관련 반론보도

본지 지난 3월 10일자 사회면 『“보증금 최대 8배↑, 한푼도 못받을 판”…벼랑 끝 경동시장 상인들』기사와 관련해, 재무상태 악화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것이라는 상인들의 우려에 대해 경동시장측은 감정평가법인에서 실시한 자산 감정평가액이 올해 기준 1500억 원에 달해서 임대보증금을 돌려줄 자력이 충분하다고 밝혀왔습니다.

또한 경동시장은 상인들과 1년 단위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것은 상가임대차보호법 위반이 아니고, 상인들이 확정일자를 받는 것을 방해한 사실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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