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새끼

  • 등록 2022-10-08 오전 10:00:00

    수정 2022-10-08 오전 10:00:0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기자란 직업은 ‘형 먹기’가 참 좋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기자-취재원 사이에는 조금의 허물만 벗으면 “형”이란 표현을 스스럼 없이 쓰는 경우가 많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친밀함의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는 않으나.

작년 이 맘 때 쯤 TV를 보던 지인이 혀를 끌끌 찼다. S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 유력 대선주자였던 윤석열 후보가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라고 불러.” 윤 후보는 본인과 20~30살 가까이 차이나는 이승기, 양세형, 김동현, 유수빈 등 출연자들과 형을 먹는 중이었다.

(사진=MBC 방송 화면 갈무리)
누가 봐도 초면인 이들 사이에 형을 빙자한 반말 말씨는 거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작 말을 놓고 있는 윤 후보 스스로도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대선 전에 이르러 ‘찍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하던 지인의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었다.

워낙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기자라는 직업을 하다보니 처음부터 다짜고짜 말을 놓는 취재원이 생각보다 꽤 많다. 초년병 때야 당혹스러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맞춰주는 공력 정도는 쌓았다. 다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는 거니까.

2. 윤 후보가 유력 대선후보로 떠오르면서 그의 주변에 닿았던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성향을 여러 차례 들었다. 술을 좋아하고, 스킨십이 거침없으며, 그립감이 좋은 리더십을 가졌다. 말 그대로 ‘형님 리더십’이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연출된 공간 내에서 행동을 삼가는 문 전 대통령은, 기사 작성에 있어 꽤 친절한 대통령이었다. 사전에 원고를 꼼꼼히 확인할지언정 돌발 상황을 잘 만들지 않았다.

그래도 때로는 연설문은 치워두고 속내를 드러내던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날 것’의 메시지를 듣고 싶기도 했다. 윤 후보라면 거침 없이 속시원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도어스태핑에 나선 결기도 그래서 가능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된 이후 외교 무대에서 비속어 논란이 빚어지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평소 윤 대통령의 태도에서 기인한 바가 적지 않다. 평소에도 시원시원한 언행을 즐겼다는 것이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2021년 6월에 보도한 ‘2년 전 윤석열 “앙꼬 없는 한국당 놈들, 문 정부 내성만 키워”’ 기사에도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총장 시절 윤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 이 기사에는 ‘새끼’라는 표현이 두 차례 등장한다.

3.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새끼’는 본래 시아우를 가리키던 ‘시아기’였다고 한다. 남편의 아우인 시동생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시아기’에서 ‘새기’로 그리고 ‘새끼’로 소리가 변하면서 본래의 뜻 대신 전혀 다른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의미가 변했다지만 원래 시동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니, ‘욕’의 정도가 강한 편은 아니다. 남자 무리에서는 친근함을 담은 비속어로도 자주 활용되고 접두사로 쓰게 될 경우에는 욕의 의미가 전혀 없어지기도 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내 새끼”로 부르는 것도 ‘새끼’가 갖는 비속어나 욕설로서의 정도를 옅게 만든다. 다양한 활용성을 감안하면 무턱대고 ‘motherfucker’로 번역하기 어렵단 의미다.

윤 대통령 스스로는 기억이 없다고 하고 대통령실은 새끼가 우리 국회를 지칭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비록 새끼라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윤 대통령의 발언에 분노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까지 거친 언사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4. 이 발언이 열흘이 넘게 대한민국의 정계를 들쑤셔 놓아야 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인가. 첫 보도를 한 MBC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부·여당이나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안까지 결의한 야당이나 소모적 논쟁이란 인상이 짙다.

안 보이는 데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우연히 기자단 카메라에 포착됐다. 공식 석상에서 비공식 석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잡힌 것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카메라 앞에서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한 윤 대통령의 경솔함은 아쉽다. 언론 보도에 앞서 대통령실이 비보도를 요청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지난 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욕설로 구설에 올랐다. 허리케인 피해 지역인 미국 플로리다주를 방문하던 중 바이든 대통령이 ‘누구도 내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No one fxxx with Biden”이라고 말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앞서 지난 1월에도 기자에게 비속어를 썼던 바이든 대통령은 사과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한국 정치는 ‘바이든’과 ‘날리면’으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둘 중 하나는 맞는 말일 것이다. 진나라 간신배 조고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지록위마는 간신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고사다. 21세기 한국에도 역사에 남을 간신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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