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예상치 못한 심정지로 목숨을 잃을 뻔 한 사람이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생명 건졌다는 이야기는 가끔 뉴스를 통해 접하는 훈훈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만큼 갑작스런 심정지에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통계적으로 병원 밖에서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생존할 확률은 5%미만이며, 그 중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로 퇴원하는 경우는 1%에 불과하다.
|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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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음은 심장이 정지된 상태로 정의 된다. 하지만 모든 죽음을 심정지에 의한 죽음이라 하지 않는다. 24시간이내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심정지에의해 사망한 경우를 심정지에 의한 ‘심장돌연사’라고 한다. 사람들이 보통 ‘심장 마비’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이런 심장마비, 즉 심정지는 왜 발생할까. 우리가 심정지라고 부르는 상태는 기계적으로는 심장이 혈액을 짜내주지 못하여 혈액 순환이 멈춘상태를 뜻하지만, 그 원인이 되는 전기적 상태는 ‘심실무수축’과 ‘심실세동’ 두 가지가 있다. 심실무수축은 심실이 전기적 움직임 조차 없는 상태이고, 심실세동은 전기적으로는 심실의 근육세포들이 계속 자극을 받고 움직이고 있으나, 세포단위에서 제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동시적 수축을 해야 수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펌프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이중 심실무수축은 심각한 약물중독이나 전해질 이상 이외의 경우에는 잘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심장돌연사의 원인이 되는 심정지는 ‘심실세동’에 의한 것이다.
심장돌연사의 가장 흔한 원인은 심근경색증이다.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심장근육이 일부 괴사가 일어나는데, 괴사가 일어난 부위의 심장세포는 전기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이 부위에서 심실세동이 유발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선천적인 이유로 심장세포에 전기적 불안정이 있는 경우나 심부전이 심한 경우에도 갑작스런 심실세동이 발생할 수 있다. 정상맥박이 심실세동으로 이행하는데는 1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심실세동이 된 이후에 의식을 잃는데는 10초가 걸리지 않고 그 상태로 방치되면 뇌손상이 시작되는데 4분, 비가역적 죽음에 이르는데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심실세동에 의한 심정지를 겪는 당사자는 그 상황에서 어떤 대처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심정지는 불가역적인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 심실세동이 정상맥이 되도록 제세동 치료를 해 주거나, 펌프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장을 대신해서 심장 압박을 해 주면서 심장의 전기적 상태가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면, 심장이 다시 정상기능을 할 수 있다.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심정지때 때마침 의료진이 옆에 있길 기대하기 어렵다. 마침 옆에 있던 누군가가 뇌손상이 시작되기 전, 4분이내에 그런 조치를 해 준다면,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옆에 누군가 있을 확률은 45%이고, 옆에 사람이 있는 경우에 그 중 한사람이 심폐소생술을 해 주는 경우는 30%정도이다. 이렇게 심정지를 목격한 주변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해 주는 것을 bystander CPR이라고 하는데, 이 비율은 적극적인 심폐소생술 교육 덕분에 2006년에 비해서 2016년에 열배이상 상승했지만, 여전히 10명중 7명은 주변에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매년 17000명 이상이 ‘심장돌연사’로 사망한다고 한다. 내가 주변 사람이 쓰러졌을 때 도와줄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준비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 나와 사랑하는 내 가족들을 지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