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빚 많으면 돌려막기 어려워진다

[이데일리 김보경 김도년 기자] 직장인 K씨는 지금 빚더미에 눌려 있다. 매번 결제 대금이 모자라 벌써 3개월째 4장의 카드를 이용해 현금서비스를 받은 후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최근엔 전세자금 때문에 급전이 필요해 3개 카드사로부터 500만원을 카드론으로 끌어 써야 했다. 그는 “은행에선 더 이상의 추가대출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한도에 여유가 있어 급한 김에 끌어쓰다 보니 벌써 1000만원 정도 빚이 늘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K씨처럼 여러 금융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았거나, 신용카드를 여러 장 쓰는 다중채무자들은 카드대출이나 현금서비스, 리볼빙서비스를 충분히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다중채무자들에 대한 카드론 승인기준을 강화하고 현금서비스와 리볼빙서비스 한도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4일 “가계부채 문제는 신용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다중채무자들에게서 먼저 터질 것”이라며 “다중채무자들에 대한 현금서비스와 리볼빙서비스 한도를 줄이고 카드론 승인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구체적인 기준과 방법을 정하기 위해 지난달 중순부터 은행연합회를 통해 다중채무자 대출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카드대출을 4건 이상 받은 다중채무자는 29만9728명. 이들이 대출받은 금액은 모두 3조5700억원에 이른다. 1인당 대출금액이 대략 1200만원이다. 감독당국은 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 등 다른 금융회사 대출이 있는 다중채무자들을 포함하면 다중채무자 대출실적은 4∼5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적인 이유는 카드사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카드사들은 자체 신용평가시스템(CSS)을 통해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3~4곳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기록이 있으면 카드론을 승인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카드사들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들 저신용자들에게도 대출의 물꼬를 터주고 있다는 게 금감원의 분석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최근 은행권의 가계대출에 대한 총량규제를 강화하면서 ’풍선효’과’를 통한 2금융권, 특히 카드사들의 대출은 더욱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사 별로 CSS를 통해 현금서비스와 리볼빙서비스 한도, 카드론 승인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데, 올들어 카드사간 경쟁 때문에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는 면이 있다”며 “더욱 철저하게 적용하라는 게 당국의 지도 방침”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일단 이 같은 방침을 일단 업계 자율에 맡길 예정이지만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말 주요 카드사 최고경영자(CEO)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 “회원의 결제 능력 범위 내에서 카드사용이 이뤄지도록 이용한도 부여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카드업계는 이에 대해 이미 자율적으로 다중채무자에 대한 카드대출을 관리하고 있다며 금감원의 이 같은 방침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업계 카드사의 한 임원은 “신용등급이 1등급인 고객이라도 다중채무자라면 카드대출을 제한하는 기준이 있다”며 “다른 금융기관 대출 총액에 대해서도 카드론을 제한하는 기준 등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어느 정도까지 제약을 가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