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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훈아]"노래인생 40년 깨달음? 오직 연습뿐이라는 것"
- [조선일보 제공] 한 마리 ‘호랑이’가 앉아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여의도 MBC 방송센터에서 만난 나훈아(58). 질박한 경상도 억양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와 악수를 하면 손이 뻐근하다. 청바지에 검은 재킷 위로 드러나는 몸매, 군살 하나 없다. 부릅뜬 눈 주변의 팽팽한 피부에서도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머리칼과 수염을 물들이고 있는 흰 빛은 옹골찬 39년 노래 인생을 상징하는 ‘훈장’이다. ―내년이면 데뷔 40주년이다. 기분이 어떤가? 오랜 세월 깨달음이 있다면.“특별한 건 없다. 연습, 연습, 연습 뿐이라는 것 정도? 초등학교 4학년도 다 느끼는 것일거다. ‘무슨 일을 하든 연습만이 최상의 길’이라는 걸 매번 깨닫고 있다. ―무대 이외의 곳에서는 왜 이렇게 만나기가 힘든가?“스타가 뭔가?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다. 그리고 꿈을 파는 사람이다. 관객은 꿈을 사러 오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대로 꿈이고 별이어야 한다. 대중이 스타에 대해 이것저것 다 알아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66년 데뷔, 소리를 꺾고 비틀며 감정을 집어넣는 창법을 창조한 ‘트로트 황제’는 아직도 날이 서 있다. 노래인생 40주년을 앞두고 신곡으로 채워진 기념앨범 ‘벗’, ‘뉴 프리 스타일(New Free Style)’을 발매했고, 지난 10일에는 한강 노들섬에서 광복 60주년 기념 대형공연 ‘나훈아의 아리수’(17일 밤 9시40분 MBC 방영)를 펼쳐 1만4000여명 관객을 끌어모았다. ‘강촌에 살고싶네’, ‘머나먼 고향’, ‘고향역’, ‘물레방아 도는데’, ‘고향무정’…. 숱한 고향 노래를 불러 명절이면 더욱 생각나는 이 타고난 소리꾼. 3년여 만에 인터뷰에 응한 그로부터 마음 깊은 곳 얘기들을 하나 둘 끄집어냈다. ―음반사에서 사환 생활을 하며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고생한 끝에 데뷔했다는 얘기가 있다.“하하, 다 거짓말이다. 옛날 기자들이 소설 쓴 거다.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 덕에 부산 우리 집은 상당히 부자였다. 나 어렸을 때, 부산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4층이었는데 아버지가 3층짜리 건물을 갖고 있었으니. 옛 기사에는 내가 구두닦이를 했다는 내용도 있는데 우습다. 대학 간 형 따라서 서울로 왔고, 서라벌 예고 시절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녀석’으로 소문 나면서 오아시스 레코드 사장 앞에서 노래를 했다. 이어서 바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수록된 음반을 취입했다. 느닷없이 떠서 솔직히 제대로 된 신인시절이 없었다.”―나훈아 하면, 60~70년대 남진과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그야말로 ‘공생공존(共生共存)’이었는데 정말 대단한 시절이었다. 남진은 전라도 출신에 하얗고 예쁘장하게 즉 도회적으로 생겼고, 나는 경상도 촌놈에 시커먼 게 소도둑처럼 생겼으니 완전히 대조적인 거다. 당시 김대중, 김영삼 등 지역을 대표하는 두 정치인의 대결구도에 편승한 측면도 있다.” ―두 사람의 경쟁은 누구의 승리로 끝난 걸까?“글쎄, 각자의 길을 갔기 때문에 승패를 가늠할 수 없다. 남진은 크든 작든 많은 무대에 서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스타일이고, 나는 배가 고파 라면 하나를 먹는 한이 있어도 내가 설 자리가 아니면 나서지 않는 식이었다. ―”남진이 시켰다”고 횡설수설하며 한 관객이 무대에 뛰어올라와 사이다 병을 휘둘러 얼굴을 70바늘이나 꿰맨 사건도 있었다.“아마 목포 공연이었던 것 같다. UDT 출신이라던데, 하여튼 죽을 뻔 했다. 내가 완력이 있으니까 이 정도지 목을 겨냥하고 들어왔으니 다른 가수였으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거다. 당시 무대에서 10여분간 싸웠는데, 관객들은 장난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다 피가 쏟아지는 걸 보고 경찰이 출동했다.” 이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나훈아가 자신의 왼쪽 뺨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직도 굵은 흉터가 선연하게 얼굴 한 쪽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는 “그 일 말고도 연예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깡패들과 싸운 일이 여러 번. 그래서 7번쯤 경찰서에 들어갔다 훈방됐다”며 “쇼를 할 때마다 분장실에 찾아와 여자 무용수 가슴을 마구 주무르는 깡패들 작태를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당신은 타고난 소리꾼인 것 같다. 가수로서의 인생에 만족하나?“다시 태어나면 노래 안 한다. 내 스타일은 어쩌면 남대문 시장에서 수건 하나 목에 매고 소리치며 장사하는 거다. 끝나면 저녁에 소주 한잔 마시며 옛 노래 부르고…. 그런데 이렇게 평생 노래하며 살고 있으니 항상 불만스럽다. 그래도 가수 또는 연예인으로 스스로 도취돼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반성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특유의 꺽고 비트는 창법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어려서 할머니 따라다니며 민요공연을 봤던 영향이다. 최희준, 남일해 등 선배들은 노래를 깨끗하게 불렀는데, 나는 민요에 바탕을 둔 창법으로 음을 이렇게 저렇게 꺾어 불렀다. 이후 후배들은 내 창법을 교과서처럼 따라하고 있다. 가요사에 남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훈아는 ‘트로트’라는 표현에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였다. “영어로 쓰면 ‘trot’인 ‘트로트’는 4분의 2박자인 리듬을 나타낼 뿐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서와 한을 담은 전통가요를 일컫는 명칭이 왜 외국어라야 하냐?”며 ‘트로트’ 대신 ‘아리랑’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는 몇개월전 각 방송사 음악 프로 관련 PD들에게 이런 생각을 담은 문건을 일제히 보낸 적도 있다.―직접 작사, 작곡도 하는 당신의 음악활동은 끝이 없다. “내 자랑 한번 하자. 이 정도로 긴 세월 노래하며 끊임없이 새 히트곡을 내는 가수가 있는가? 게다가 나는 80년대 이후 방송의 힘도 외면한 채, 라이브에만 전념했다. 마이클 잭슨만 봐도 예전 히트곡을 계속 우려먹지 않는가? 난 언더그라운드 아리랑 가수다. 이번에 나온 ‘벗’ 앨범은 유명 작곡가 14명이 나를 위해 곡을 써서 만들어진 기념비적 음반이다. 100년쯤 지나면 희귀앨범이 될 것이다.”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나? 20~30대 못지 않은 근육질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운동 안 하면 2시간 공연도 못한다. 빨리 걷는 운동을 한다. 대중 앞에 서는 스타가 배는 불뚝 나오고 살이나 디디(많이) 쪄있으면 어쩌겠나? 담배도 끊은지 5년이 넘었다. 사명감에서 한 일이다.”나훈아는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했다. 85년 14년 연하의 후배가수 정수경씨와 결혼, 1남1녀를 두고 있다. 1970년대 당대의 여배우 김지미씨와의 열애설은 중년 팬들에게는 아직도 기억에 뚜렷한 ‘사건’. “예전 김지미씨와…”라고 운을 떼자 “어허 됐다니까”라며 슬쩍 웃어넘긴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는 ‘나훈아의 아리수’ 공연 녹화 테이프를 보며 제작진과 함께 편집 작업을 하고 있다. 거대한 성(城) 모양의 세트를 뚫고, 말을 탄 채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친다.
- "업계 상식 뒤집으니 5년만에 1백배 성장"
- [오마이뉴스 제공] ▲ 회사를 만든 지 5년만에 직원 수는 45배, 매출은 100배가 느는 등 업계의 기록을 깬 신창연 '여행박사' 대표. ⓒ 오마이뉴스 권우성일본여행 전문업체인 여행박사(www.tourbaksa.com)는 여러모로 '깨는' 회사다. 여행업계의 상식을 깼고, 사장의 생각과 행동이 시쳇말로 '깬다'. 여행박사는 회사를 만든 지 5년만에 직원 수는 45배, 매출은 100배가 느는 등 업계의 기록을 깼다. 2000년 4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직원 수가 180명에 이르고, 올해 상반기 매출액만 223억원을 달성했다. 그 결과, 여행박사는 단일 국가를 대상으로 한 여행업체 가운데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10만원도 안되는 비용의 2박3일 일본여행, 젊은 직장인을 위한 주말 '밤 도깨비' 관광. 여행박사를 먹여 살렸던 히트 상품들이다.지난 2002년 여행박사가 '규슈 왕복 9만9000원'이라는 초특가 상품을 내놓았을 때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부산~후쿠오카 간 쾌속선 비틀의 왕복 운임만 17만원이었으니 경쟁 상대가 없었다. 게다가 비즈니스 호텔 2박까지 포함됐고, 노 팁(tip)이었으니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상품이었다.'가격 파괴'의 비밀은 단순했다. 지금은 여행업계의 상식이 됐지만, 여행 비수기 때 선박회사와 호텔쪽으로부터 최대한의 할인을 적용받아 원가를 대폭 낮췄다. 평소보다 50~70%나 싼 값으로 계약을 체결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 유치다. 자칫 모객에 실패할 경우 성공 조건이 실패 요인으로 급변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행박사는 큰 폭의 가격 할인을 위해 '입도선매'해 두었던 물량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히트 예감 상품을 수익으로 연결했다.여행박사의 성공 신화를 이끈 신창연(42) 대표이사. 그의 인생역정은 여행박사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와 야반도주한 그는 구미의 스티로폼 공장에서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봉천동 악세서리 공장과 고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주간지 판매 아르바이트, 이삿짐·소금 나르기, 우유 배달, 나이트클럽과 칵테일바 웨이터 등 여행업계에 몸담기 전까지 50개가 넘는 직업을 경험했다.신 대표가 늦깎이로 경원대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한 것도 '관광'이 "놀고 먹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적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대학 3학년 때인 1989년 <스포츠 서울>에 연재돼던 '일본 무전여행'에 '필'이 꽂혀 단돈 3000엔을 갖고 일본여행을 다녀왔던 게 '일본여행'과의 질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수십 차례 일본을 오가며 몸으로 익힌 경험을 바탕으로 옛 동료들과 여행박사를 만들었다.'사진발이 잘 안 받는 인상'이라는 홍보팀장의 말처럼 신 대표의 첫 인상은 투박했다. 짙은 주홍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택배회사 직원'이었다. "택배회사 직원인 줄 알았다"는 농담에 그는 "점퍼까지 입으면 환경미화원"이라고 웃으며 응수한다. 그나마 꽃무늬 셔츠 차림으로 출근해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홍보팀장의 '강권'에 못이겨 단정한 옷차림으로 바꿨단다.신창연 대표를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당주동 여행박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5년만에 매출 100배 성장, 이와 같은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카테고리별로 정리해서 이야기를 하면 쫙쫙 나오는데…. 남들하고 다른 시각에서 열정을 다한 것이 비결 아닐까 싶다. 성공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족하고 직원들이 만족하면서 일을 즐기면 성공한 것 아닌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을 텐데."우리는 실패라는 단어를 잘 안 쓴다. 실패의 기준이 다르니까. 자본금 없이 시작했던 것이니 실패라고 할 게 없다. 어차피 무(無)에서 시작한 거니까. 망하더라도 (책상 위를 가리키며) 종이와 볼펜은 남을 테니까."성공의 기준이 '자기 만족'이고, 지금 망하더라도 '종이와 볼펜은 남는다'는 신 대표. 그에게 '행복하냐'고 묻자, "자기 좋아서 사는 게 인생 아니냐"며 "고통까지도 즐기자는 게 내 좌우명"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한 번 왔다가는 건데" 뭐 그리 복잡하게 따지며 사느냐는 투다.- 여행 상품으로써 '일본'의 매력은 무엇인가."매력이 너무 많다. 가깝고 음식도 입에 맞고.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팁이 없는 나라라는 게 매력적이다. 그런 컨셉트에 맞춰 우리도 가이드 팁을 받지 않는다.일본이라고 하면 다들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데, 선진국들은 대개 물가가 싼 것부터 비싼 것까지 다양하다. 잘 찾으면 싸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부산에서 일본 가는 게 부산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요금이 싸다. 그동안 걸림돌이었던 비자 문제도 노비자가 적용돼 해소됐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깊게 파면 팔수록 넓어진다'는 원칙은 일본여행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여행박사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선입견을 깨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대박 상품의 조건이 뭐냐'고 묻자 신 대표는 "가격 싸고 질 좋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거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싼 가격에 서비스까지 좋게 하는 게 경쟁력이고 노하우라는 것.이런 탓에 여행박사에는 세 가지가 없다. 팁이 없고, 옵션 등의 강제 쇼핑이 없고, 신문광고가 없다. 그런데도 10만원 미만의 여행상품을 내놓으니, "여행박사가 만들면 (여행상품의) 기준이 된다"는 평가를 받는다.가이드 팁과 의무적인 쇼핑코스는 한때 여행업계의 생존 필수전략이었다. 그것이 손해볼 정도의 파격적인 가격을 만회해 주는 히든카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카드를 스스로 버렸다?신 대표는 "그런 정책이 싸면서도 비지떡이 아닌 상품을 만들게끔 했고, 입소문을 통한 모객 효과를 높였으니 더 이익"이라고 말한다. 신문광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여행사의 경우 광고비가 직원 인건비의 서너 배를 넘기도 하는데, 여행박사는 인터넷 예약 등을 통해 그와 같은 비용을 줄이는 정책을 폈다.- 오래 전에 이미 여행상품의 가격 구성비를 공개했는데, 업계에서는 비공개가 불문율 아닌가. "요즘도 (다른 업체에서는) 여행박사의 수익 구조를 궁금해한다. 여행업계 전체가 살려면, 결국 노하우는 공개돼야 한다. 내가 직원들과 가장 많이 싸우는 것도 그들의 노하우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가이드들에게도 정보를 공개하라고 해도 '내가 몇십년 동안 쌓은 노하우인데 왜 공개하느냐'고 반박한다. 결국 안팎으로 오픈하는 게 살길이고, 진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누드(nude)' 정책이라고 부른다."- 여행업계에서는 '정보 공개'를 탐탁치 않게 여길텐데."처음에는 혼자 잘난 척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왕따'도 당했다. 물론 이를 반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다. 결국에는 같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장에서 말단까지 직원들 급여도 모두 공개한다. '이 사람은 이래서 인센티브를 많이 받았으니, 벤치마킹해라'는 의미에서다."- '대박 상품'의 조건이나 노하우는 무엇인가."가격 싸고 질 좋은 것(웃음). 그거 하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거기에 서비스까지 좋으면. 싸긴 싼데 '산마이(三枚·3류)'라는 평가를 받으면 (손님들이) 떨어져나간다. (대박 상품의 경우) 처음 계산할 때에는 답이 안 나온다. 그러나 인원이 늘어나고 물량이 늘어나면 가격 단가가 내려가 대박의 조건에 가깝게 된다. 그걸 수익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정직하게 승부하는 게 최선이다."- 여행박사의 모든 상품이 성공한 것은 아닐텐데. 실패작은."한국-나가사키-중국을 잇는 '한·중·일 삼국지'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조했다. 홍콩 '밤 도깨비'도 그렇다. 지난해에는 재미를 봤다. 그래서 당연히 올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접근했다. 당연히 (인원이) 넘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대박이 아니라 피박이 터졌다. 그래서 '집에서 기르는 장미 하나도 사람 손길이 안 가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것도 손길이 안 가서 결국 죽었고, 몇천만원을 날렸다. '왜 안 되었을까' 지금도 의문이지만, 결과적으로 건방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 일본 여행상품의 성공을 발판으로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던데. 언제쯤이면 중국 여행상품이 일본을 역전할 것으로 보는가."4~5년이면 중국 시장이 일본을 넘어서지 않겠느냐고 전망한다. 누가 이것을 이끌어 갈 것이냐가 문제다. (중국이) 가능성이나 잠재된 역량으로 보자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엄청난 잠재 효과를 갖고 있는데, 과연 이걸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대로 파악해 실행에 옮기느냐가 숙제다. 현재 중국 여행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로 노크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행상품의 트렌드가 깃발여행에서 배낭여행, 호텔팩 등으로 변해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는가."전문가들의 예측이 다 다르다. 개별여행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개별 여행이 확대되는 만큼 전체 여행시장은 늘어난다. 가족여행만 느는 게 아니라 패키지도 늘고, 그러면 전체 여행시장이 늘게 된다. 앞으로는 패키지 상품보다 자유여행이 더 비싸질 것이다. 여행 요금이 바싸더라도 내 여행에는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많기 때문에."- 웹 담당자가 10명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여행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인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이들은 여행박사 뿐만 아니라 계열사 사이트까지 관리한다. 장기적으로 신문의 구독자는 줄어들지만, 인터넷 사용자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투자하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이) 외부 사람들에게 우리 회사를 알리는 창구이기도 하고, 예약면에서도 (인터넷의) 장점이 많다."대표의 사고방식만큼이나 여행박사의 홈페이지도 '쿨'하다. 내부 직원에게도 '공개할까 말까' 한 내용의 대표이사 글을 외부에서도 조건없이 볼 수 있다. 홈페이지 '대표이사 게시판' 코너에는 직원의 임금 구조와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까지 거르지 않고 게재돼 있다. 여행박사 홈페이지는 어떤 비판 글이라도 삭제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는 내부 직원이건, 외부 손님의 불만이건 마찬가지다.최근 '대표이사 게시판'을 달구고 있는 핫이슈는 '팀장·지점장, 사장까지 투표로 뽑기'라는 신 대표의 도발적인 제안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도 국민 투표로 뽑는데, 왜 기업의 사장은 대대로 물려받거나 팀장은 사장이 뽑아야 하느냐"는 게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최근 '대표이사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니까, 사장까지도 투표로 뽑으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던데. 내부 반응은."내부에서는 당연히 반대가 많다. 모든 게 다 그렇듯이 새로운 변화에는 거부 반응이 든다. 그래도 계속 바꿀 거다. 직원들은 '또 바꾸냐'고 하는데, 안 나쁘면 안 바꾸겠지만 나쁘면 바꿔야 한다. 그게 우리 회사의 장점인데. 9월 10일에 직원 연수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사장과 팀장 선출 투표를 할 예정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사람을 직접 뽑는데, 왜 여행박사 팀장은 사장 맘에 드는 사람이 뽑혀야 하느냐?"가장 최근 신 대표가 '대표이사 게시판'에 올린 글은 '변화와 변덕의 차이'에 관해서다. 이 글은 "변덕스러운 '샤쵸(사장)' 때문에 힘들어 하는 직원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나 또한 시행착오를 많이 겪는다"며 말문을 연다.그러면서도 그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진리는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난 이 못된 습관을 절대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며 "어떤 결정이나 변덕을 부릴 때도 '개인'보다는 절대적으로 '우리'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기 때문"이라고 직원들에게 '시비'를 건다. 그러나 아직 샤쵸의 '낚시'에 걸려 댓글을 단 직원은 없다. 왜 그럴까. <!-- update : 2005-08-30 오후 4:29:11--><!-- update : -->
- 미샤, 11개국 동시 사은행사 개최
- [이데일리 피용익기자] 에이블씨엔씨(078520) 미샤는 성공적인 해외 진출 기념으로 한국, 미국, 호주, 멕시코, 일본, 홍콩, 대만, 싱가폴, 베트남, 몽골, 태국 등 총 11개국에서 `아이 러브 미샤 빅 이벤트`를 동시에 실시한다고 17일 밝혔다.`아이 러브 미샤 빅 이벤트`는 지난 15일 국내 미샤 매장을 시작으로 오는 20일부터 전세계 매장으로 확대 실시되며, 미샤 매장에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에게 응모 기회를 제공한다.1등 2명에게 폭스바겐 뉴비틀, 2등 10명에게 김치냉장고, 3등과 4등에게는 각각 아이팟 미니 MP3(50명)와 10만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100명), 5등에게는 미샤 dsw 기초 4종 세트(330명)를 선물로 준다.김보동 에이블씨엔씨 마케팅본부장은 "이번 이벤트로 미샤의 브랜드 로열티를 강화하는 한편 글로벌 브랜드로써의 위상을 정립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한편 에이블씨엔씨는 현재 미국, 대만, 홍콩, 호주, 일본 등 9개국에 35개 오프라인 매장과 1개의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이며, 이번 주 중 태국 매장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