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2008 리포트]‘무적함대’ 스페인, 새 역사에 도전하다

  • 등록 2008-06-23 오후 6:29:32

    수정 2008-06-23 오후 6:30:07

▲ 이탈리아의 8강전 경기가 열리기 전, 스페인 서포터스가 승리를 기원하며 경기장 주변을 행진하고 있다. (사진=송지훈 기자)

[비엔나(오스트리아)=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비엔나 에른스트-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로2008 8강 네 번째 경기 스페인-이탈리아전 취재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4강의 마지막 한쪽 모서리를 채우는 승부인데다 두 팀 공히 우승권으로 분류되는 강호들인 만큼 진지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어느덧 대회가 종반에 접어들어 결산을 앞둔 까닭인지 각국 언론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연장전으로 접어들 무렵엔 근처에 있던, 백발이 성성한 영국인 기자 서너 명이 대화를 시작했는데, 범상치 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노(老)기자들의 대화 내용이 궁금했던 터라 승부차기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 팀 모두 지쳤지만 그래도 스페인이 유리할 거야. 막판까지 선수들의 열정이 살아 있더군.”

“이제껏 중요한 대회에서 스페인이 이탈리아를 꺾는 장면을 본 적이 없어. 오늘 승부차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몰라. 1994미국월드컵 때 절호의 찬스가 있었지만 놓쳤지.”

“8강 컴플렉스도 있지. 2002월드컵 당시에도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3-5로 패했지. 상대는 한국이었고 감독은 거스 히딩크였어. 현장에 있었지만 눈으로 보면서도 믿지 못하겠더군.”

“카시야스(GK/스페인)가 먼저 하나 막았군! 경험상 승부차기에서 ‘먼저’는 종종 ‘결국’이 되지.”

“역시 스페인이 이겼어. 역사를 바꾼 거지. 스페인 팬들에겐 잊을 수 없는 밤이 되겠는걸.”

“아라고네스 감독(스페인)이 어제 몇몇 스페인 기자들과 만나서 4강에 오를 경우 히딩크 감독과 맞대결을 벌이게 되는 것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는군. 기자회견장에서 사실인지 확인해봐야겠어.”
▲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미디어센터를 찾은 스페인 기자들. 언론인의 품위를 중시하는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다.(사진=송지훈 기자)

베테랑 외신기자들의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스페인의 승리가 갖는 의미는 여느 1승 그 이상이다. 메이저대회에서 ‘8강’과 ‘이탈리아’라는, 지긋지긋한 두 가지 벽을 허물어낸 까닭이다. ‘무적함대’가 4강에 이름을 올린 건 1984년 유럽선수권(준우승) 이후 24년 만이다.

비중 있는 국제대회서 아주리 군단에 승리를 거둔 기억을 되짚으려면 88년 전인 1920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각종 대회마다 우승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도 번번이 중도 탈락하는 등 이제껏 쌓아올린 비운의 역사에 ‘아주리의 그림자’도 짙게 배어있었다는 의미다.

오랜 세월 이탈리아 앞에서 ‘약한 자’ 겸 ‘도전자’였던 스페인은, 그러나 이번엔 경기 시작 전부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팀 컨디션과 전력 공히 상대에 비교 우위를 점했다 평가받은 까닭이다.

우선 분위기에서 앞섰다. 조별리그 3경기서 전승을 기록한 스페인은 천신만고 끝에 8강에 턱걸이한 이탈리아(1승1무1패)에 비해 한결 여유로웠다. 유로2008 본선을 포함해 2006년 10월 이후 치른 A매치 21경기서 무패 행진을 이어온 것 또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중원을 이끌어 온 두 주역 안드레아 피를로와 젠나로 가투소(이상 MF)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것 역시 무적함대의 승리 가능성을 높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듯 긍정적인 요소를 두루 등에 업은 스페인은 실전에서도 전반적으로 흐름을 주도하며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점수는 0-0이었지만 볼 점유율(스페인56%-이탈리아43%), 유효슈팅 수(27개-14개), 총 패스 횟수(803개-587개) 등 다수의 지표에서 이탈리아에 앞섰다.

잦고 빠른 패스워크를 통해 상대의 밀집수비를 뚫어내려 애썼고 D.비야, F.토레스 등 민첩한 공격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전진패스도 적극 시도했다. 수비시에는 최전방 스트라이커 루카 토니 등 체격조건이 우수한 이탈리아 선수들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협력플레이를 선보였다.

아주리군단과의 대결 과정에서 나타난 전술적 장점과 문제점들은 러시아와 맞붙을 4강전, 독일과의 조우가 유력한 결승전 등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없이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1964유럽선수권 이후 단 한 번도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던 스페인은 이번엔 ‘마지막 승자’로 남아 환호할 수 있을까. 유로2008을 통해 아픈 역사와의 단절에 성공한, 하지만 더 크고 중요한 도전을 눈앞에 둔 스페인이 뜻을 이룰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베스트 일레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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