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131개 단체, 판결문 '먹칠' 항의…"피해자 고통에 눈감아"

정의연 등 국내 131개 시민단체 공동성명서 발표
'위안부' 2차 손배소 각하한 재판부 규탄 기자회견
"피해자 존엄과 명예회복 위해 일본 책임 물을 것"
  • 등록 2021-04-27 오후 3:28:31

    수정 2021-04-27 오후 3:28:31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차 손해배상 청구를 각하하자 시민단체들이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외면한 판결이라며, 잇달아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의기억연대 등 131개 단체가 27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지난 21일 각하 판결을 내린 판결문에 먹칠을 하며, 재판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상원 기자)
정의기억연대 등 131개 시민단체는 27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와 외교 논리에 사법부의 책임을 떠넘긴 역사상 최악의 판결”이라며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외면한 재판부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재판장 옷을 입고 각하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흉내 내며, 해당 판결문에 직접 먹칠을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항의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각하 판결을 내렸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심리에 들어가지 않는 결정으로 원고에게는 ‘사실상 패소’에 해당한다.

단체는 일본군 성 노예제라는 심대한 범죄행위를 국가의 주권적 행위로 해석하고,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보다 ‘국가면제’라는 국제 관습법에 집중한 재판부의 판단을 비판했다. 국가면제는 국제법상 한 주권 국가에 대해 다른 나라의 재판권이 면제될 권리다.

김정수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 상임대표는 “법에도 눈물과 마음이 있는데 법원의 판사들을 이를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마치 법 기술자들 같았다”며 “전시 성폭력은 인도에 반한 범죄이며, 범죄 가해자가 불처벌이나 사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제적 규범으로 정해져 굳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단체는 재판마다 독립적으로 판단한 것이 원칙인 만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지만, 배상 책임을 인정한 지난 1월 1차 손배소 판결과 상반되는 재판부의 판단에 우려를 제기했다.

서베네딕토 한국남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대표는 “이번 손해배상 각하 판결이 국가 면제로 진행돼 재판조차 성립이 불가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면, 지난 1차 승소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며 “완전히 다른 판결이 나오면서 일관성 없는 우리나라 사법부 법리적 해석에 대해 국민의 우려만 커졌다”고 비판했다.

정의기억연대 등 131개 단체가 27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지난 21일 각하 판결을 내린 판결문에 먹칠을 하며, 재판부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상원 기자)
단체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눈감고, 법원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외면했다고 지적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이 소송에 출발점이 피해자의 인권에 있지만, 80쪽에 달하는 판결문은 국익을 공익으로 여겨 외교 마찰과 국익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사법부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항소해 일본의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는 공동성명서를 통해 재판부가 ‘2015 한일합의’를 피해자 권리구제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도 규탄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적 책임과 일본군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이 명시돼 있지 않아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다.

131개 단체를 대표한 정의기억연대는 “재판부가 정치와 외교의 논리를 방패 삼아 굳이 박근혜 정권이 무리하게 강행한 2015 한일합의를 피해자 권리구제 수단으로 보고, 국가면제 법리 채택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 데는 참담함을 느낀다”며 “결국 이번 판결은 인권 최후의 보루라는 법의 정신을 내팽개치며 역사를 거꾸로 돌린 행위”라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연대 등 131개 단체가 27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소녀상 앞에서 일본국 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 각하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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