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보조금 재검토 시사한 트럼프 측…뒤집기 가능할까

DOGE 정부외 조직 의사결정권 없어
트럼프 출범 전 결정될 경우 의회 합의 있어야만 가능
공화당 의원들도 반도체법 폐지에는 부정적
자금 지급 지연 등 정치적 리스크 증대 '불가피'
  • 등록 2024-11-27 오후 1:36:18

    수정 2024-11-27 오후 1:36:18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정부효율부(DOGE)를 맡은 일론 머스크(왼쪽)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비벡 라마스와미. (사진=AFP)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행정부에서 미국 정부 지출 감축 임무를 맡은 정부효율부(DOGE)의 공동수장 비벡 라마스와미가 반도체법(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재검토를 시사했다. 아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보조금 지급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 미국 정부가 당초 약속을 뒤바꿀 수 있을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DOGE 수장 라마스와미 “낭비성 보조금 모두 재검토할 것”

라마스와미는 26일(현지시간) 엑스(X·옛 트워터)에 트럼프 당선자가 1월 20일 취임하기 전 기업에 약속한 반도체법 지원금을 최대한 지급하려고 한다는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의 폴리티코와의 인터뷰를 언급하며 “매우 부적절하다. 그들은 권력이양을 앞두고 지출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반도체법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함께 친환경 산업을 육성하고 첨단산업 제조기반을 유치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산업 정책이다. 반도체 법에만 약 500억달러(70조원)의 예산을 배정돼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투자한 기업들에게 지급된다.

라마스와미는 전날에도 엑스에 글을 올려 바이든 행정부가 “1월 20일 전에 IRA와 반도체법에 따른 낭비성 보조금을 신속하게 내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DOGE는 이런 막바지 수법(11th hour gambits)을 모두 재검토하고, 감사관이 이런 막판 계약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임명한 정무직 공무원들이 정부 보조금 수혜를 입은 기업으로 이직할 경우 가차 없이 폭로해야 한다 고도 주장했다.

반도체칩 보조금을 문제삼은 것은 라마스와미가 처음이 아니다. 트럼프 당선인 역시 지난 10월 조 로건과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정부가 해외 공장으로부터 반도체 공장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보조금’이 아닌 ‘관세’를 이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 10센트도 낼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트럼프 오기 전 바이든 반도체법 보조금 ‘속도전’

미국 텍사스 테일러에 있는 삼성 오스틴 공장 전경(사진=게티이미지)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감출법(IRA) 등의 산업정책을 뒤집지 못하도록 관련예산을 최대한 신속하게 집행하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이전 보조금 지급이 확정된 곳은 폴라 세미컨덕터(1억 2300만달러)뿐이었으나 대선 후 이날까지 TSMC(66억달러), BAE시스템즈(3550만달러), 로켓랩(2390만달러), 글로벌파운더리(15억달러), 인텔(78억달러) 등 5개 기업에 총 16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확정했다.

텍사스 테일러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삼성전자는 66억달러, 인디애나주에 새 반도체 공장을 짓는 SK하이닉스는 4억 5000만달러의 보조금을 받기로 돼 있지만, 아직 이는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에 불과하다. 다만 타이페이 타임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경우 한때 한 달 이상 회의가 열리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다시 활발히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보조금을 확정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계획을 뒤집거나 보조금을 삭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라마스와미가 몸담은 DOGE 역시 마찬가지다. DOGE는 부처(department)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정부 밖에 자리잡은 외부 조직위원회로 의사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나선다고 하더라도 보조금이 일단 지급된 뒤에는 법적 구속력이 생겨 의회의 동의 없이는 사실상 되돌리기 힘들다는 게 정부와 기업 관계자들의 해석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설명했다.

반도체법 자체가 초당적인 합의로 통과된 법인데다가 보조금 수혜 기업 상당수가 의원과 주지사가 공화당 소속인 지역구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마이크존슨 하원의장은 지난 2일 ‘공화당이 오는 5일 선거에서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가져가면 반도체를 폐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난 우리가 아마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하며 오히려 “비용이 많이 드는 규제나 그린 뉴딜 요건을 제거하는 쪽으로 입법이 있을 수는 있겠다”고 말했다. 이 경우 아동보육시설에 대한 요건이나 기업이 공장의 환경적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기대와 같은 사회적 우선순위가 줄어들며 기업으로서는 오히려 경영환경이 개선될 수도 있다.

보조금 삭감 어렵더라도 정치적 리스크 불가피할 듯

문제는 보조금 총액이 삭감되지는 않더라도 자금 지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이 보조금 지급을 보장하더라도 집행을 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운영하는 기업들의 정치적 리스크가 커진다는 점도 문제다. 라마스와미는 이날 올린 별개의 엑스 게시글에서 미국 전기차(EV) 회사 리비안이 조지아에 전기차 생산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 에너지부로부터 조건부 대출을 받은 것을 언급하며 “바이든이 이미 가동이 중단된 조지아공장을 짓기 위해 66억달러를 쏟아부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75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정당화하지만 이는 일자리당 88만달러의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미친 짓”이라고 비난했다. 리비안이 받은 정부대출은 반도체법과는 관계가 없지만 반도체법 역시 같은 논리로 공격당할 수 있다.

반도체법에 대한 비판은 진보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 확장을 책임감있고 공정하게 추진하기 위한 노동조합, 환경단체, 시민단체 등의 연합인 칩스커뮤니티유나이티드의 이사 주디스 바리시는 지난 8월 반도체법 보조금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에드 마키,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 등 상원의원 그룹 역시 지난 10월 러몬도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상무부는 보조금 지급 과정에서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하며, 고품질 일자리를 창출하고, 단순히 주식 매수를 통해 주주와 임원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계약조건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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