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이다. 하루에 수백 명씩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하는 대구로 가야한다고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4년 간의 생도 생활을 마치고 꿈에도 그리던 소위 계급장을 달았지만,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었다. 당초 3월 9일이었던 우리 졸업 및 임관식은 3일로 앞당겨졌다. 이마저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가족 등 외부인 초청없이 진행됐다. 방송화면으로 지켜봤다는 남동생은 화면에 비친 누나 얼굴에 비장함이 서려있었다고 했다.
폐교 위기에서 국가 의료 중심에
간호장교는 간호사이면서도 군인이다. 우리 60기 간호사관학교 졸업생 75명을 포함해 현재 1034명의 간호장교가 있다. 간호장교가 되려면 나처럼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거나 간호대학을 나온 사람 중 군 장교 선발과정을 거쳐 국군의무학교에서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지난 4년간 기숙 생활을 하며 181학점을 이수했다. 1080시간에 달하는 임상 실습으로 알코올 냄새가 내 체취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기초 군사훈련에 유격훈련, 야전간호·전투외상간호·재난응급간호 훈련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훈련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간신히 간호사 국가고시까지 합격하고서야 졸업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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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간호사관학교 출신 장교는 다른 사관학교와 달리 장기복무장교가 아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배들은 임관 후 6년간 의무복무 후 전역했다. 간호병과 영관급 자리가 극소수라 소령 진급이 어렵기 때문이란다. 중령 자리는 20여명 수준으로 말그대로 하늘의 별따기다. 대령은 7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생도 시절 기수 당 10% 정도인 교직이수자로 선발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전역 이후 보건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보건교사는 정년도 보장되고 3교대 근무 등에서 벗어날 수 있어 전역 후 최고의 직업으로 꼽히는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간호사관학교는 한 때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국방부는 IMF 금융위기 당시 국방예산 절감과 군구조 개혁 방침에 따라간호사관학교 폐교를 추진했다. 실제로 2000년과 2001년 신입 생도를 뽑지 않아 2002학년에는 2, 3학년이 없었다. 2003학년도에는 1, 2학년만 다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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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선배 간호장교가 오래 착용한 마스크에 쓸려 상처가 난 콧등에 두겹의 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이 뭉클한 감동을 줬다. 국군춘천병원에 있던 그 선배도 처음 대구에 왔을 때는 어리둥절 했다고 했다. 현재 국군대구병원에는 203명의 경증 확진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온지 일주일 정도 지났지만 아직도 방호복을 입고 환자를 간호하는게 익숙치 않은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나와 환자, 그리고 동료 의료진을 위해서 내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건 부담이다.
우리 기수의 대구 파견이 갑자기 결정된 탓에 숙소가 마땅치 않아 동구 신서동 혁신도시에 있는 준 호텔급 방에서 지낸다. 그런데 매일 6만원하는 이 숙박비를 간호장교 개인이 먼저 결제하면 차후 정산해 주겠다고 했다. 아직 첫 월급도 받지 않아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는데 부담이 됐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는 동기들도 있었다. 언론의 지적에 국방부가 대구시와 협의를 거쳐 2주씩 분을 호텔 측에 선지급하는 걸로 바뀌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긴하다.
고참 간호장교들도 있는데 왜 신참 장교들을 최일선에 투입하느냐는 지적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최고의 전문성과 소명의식을 갖춘 간호인이면서 고결한 헌신과 강인한 정신력을 겸비한 참군인이 되기 위해 4년간 갈고 닦았다. 최선을 다할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