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영락 기자]
[법과사회]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때로는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법과 사회’에서는 사회적 갈등, 논쟁과 관련된 법을 다룹니다.인구 1000만 거대도시 서울특별시의 민선 단체장을 3차례나 지낸 박원순 시장이 지난 9일 실종된 뒤 끝내 숨진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박 시장 죽음이 알려진 뒤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공소권 없음’이라는 다소 낯선 법률 표현이 등장해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박 시장이 사망 하루 전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실이 알려진 까닭입니다.
박 시장이 사망하면서 수사당국은 그의 성추행 혐의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형사피의자에 대한 기소를 담당하는 검찰은 법무부령 검찰사건사무규칙 제69조 4항에 따라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하는 경우를 둡니다.
| 서울시 관계자들이 10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고인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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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판결이 있는 경우나 보호처분이 확정된 경우,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사면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하며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역시 검찰의 공소권이 소멸됐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기소와 재판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할 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처벌의 실익이 실현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피의자의 처벌에 이르기까지는 수사부터 기소, 재판, 최종 판결까지 대단히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같은 비용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인 셈입니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추가 피의자가 있거나 나올 가능성이 있는 사건 등을 제외하면 형사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형사상 절차가 그대로 종결됩니다.
그러나 이번 박 시장 사망 사건에서는 성추행 고소가 이뤄졌다는 사실 때문에 수사기관의 수사 종결에 대한 불만이 일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건도 아닌 성추행이라는 민감한 사안인 탓에 피해를 주장한 고소인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입니다.
이는 공개된 박 시장 유서를 통해서도 이번 사건 진상에 대한 명확한 갈피가 잡히지 않는 상황과도 연관 있어 보입니다. 짧은 분량의 유서에서 박 시장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표했을 뿐 고소 사건에 대한 언급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에게 별도의 유서를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박 시장이 고소 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는지는 이제는 확인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 10일 새벽 서울 북악산에서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 시신을 구조대원들이 수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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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불법정치자금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노회찬 의원은 당직자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과거 합법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정치자금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이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여기 더해 노 의원은 특별히 대중의 사랑을 받은 정치인이었기에, 그의 죽음에는 의혹보다 애도의 목소리가 더욱 길게 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사망 하루도 안 돼 박 시장 장례를 5일간의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기로 한 시 방침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되는 등 고인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과거 사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박 시장이 여당인 민주당 인사였던 까닭에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정치적 논쟁과 뒤섞이는 모습도 일부 관찰됩니다. 박 시장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사회에 한동안 큰 충격과 파문을 남길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