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는 좋은 의도다. 그러나 방어하지 않고 싸우지 않을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13일 재단법인 여시재의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명예교수와 염재호 고려대 명예교수(여시재 이사)의 대담 중 한 부분이다.
나이 교수는 “역사는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며 “북한은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고자 하며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따라서 군사력과 동맹이 없는 상태에서 경계를 늦추면 그 결과는 매우 부도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덕성, 좋은 의도·수단·결과 ‘3박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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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도덕성은 종종 케이크의 장식같은 취급을 받지만, 사실 한 국가의 외교정책을 평가하는 데 있어 도덕성은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라는 설명이다.
다만 의도가 좋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좋은 의도, 좋은 수단, 좋은 결과라는 3박자를 갖춰야 한다.
특히 한 나라의 수장은 자신의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나이 교수는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발언 역시 이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자신의 삼촌을 죽인 이가 평화주의자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형편없는 교육자’였다는 설명이다. 나이 교수는 “내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불만은 그가 미국인들을 분열시킨다는 것”이라면서 “정치가들이 다른 정당을 ‘적’으로 삼아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은 가장 값싸고 쉬운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나이 교수는 교착상태에 놓여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서도 ‘과거’에 기거해서 도덕성을 판단하지 말고 ‘미래’를 기준으로 판단하라고 조언했다.
나이 교수는 “일본이 과거 한국에서 한 짓은 끔찍했다”면서도 “현재의 일본은 1930년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역사에만 집중한다면 한국인은 일본에 분노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 갈등은 결과적으로 한·일 양국 모두에 북한과 중국에 대한 대응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이 미래를 바라보고 어느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 일대에 더 좋은 결과를 낳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20세기의 악(evils)을 두 번 다시 만들지 않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 되면 美다자주의 복원될 것”
나이 교수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는 ‘포스트 트럼프’ 시대에서는 미국이 다시 도덕성을 기반으로 다자주의와 동맹·우방국을 중요시하는 외교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을 재가입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트럼프 정권이 탈퇴를 예고한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로의 복귀도 조속히 이뤄질 전망이다.
향후 미·중 관계에 대해서는 ‘경쟁적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팬데믹(pandemic)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이슈에서는 협력하되 경제나 기술, 안보 분야에서는 견제하는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는 ‘G2시대의 도래’가 아닌 주요국들의 견제와 균형이 중요해지는 ‘다극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로 대표되는 G2시대가 아닌 유럽연합(EU),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의 균형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할 것이란 설명이다.
나이 교수는 한국 역시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 성장으로 인상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었고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는 훌륭했다”며 “민주주의 국가의 좋은 예”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으로서는 이같은 국제적인 역학 구조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이 교수는 “한국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나라”라면서 “좀 더 지리적으로 거리가 있는 나라(미국)에게 힘을 빌려오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중국이 한국에 지나치게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미국과 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보험이 될 것”이라고 부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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