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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석유대금을 반환하라는 이란정부의 압력에 최근 한국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중동 정책에 대한 근본적 변화와 이란의 외교적 지위가 축소한 데 따른 신호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매체는 안보·경제 등 상당 부분에서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의 입장 상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준수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이란이 장기간 국제사회에 고립되면서 이란 정부가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한국인 또는 한국기업에 제재를 가할 수단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2015년 미국 제재가 이뤄지고 있던 상황에서도 한국정부가 이란정부와 타협을 모색하던 것과 비교하면 현 상황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는 지적이다.
매체는 그 이유에 대해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로 이란에 대한 제재가 해제됐던 사이, 이란시장에 대한 한국의 기대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한국기업이 진출하고자 했던 에너지, 인프라사업, 자동차 등 산업부문이 이미 중국 국영기업에게 선두를 빼앗긴 상황이어서 더이상 투자 확대는 어려웠다고 매체는 밝혔다.
앞서 뉴욕타임즈는 지난달 12일 “중국이 향후 25년 동안 이란의 금융, 통신, 항만, 철도를 비롯해 각 분야에 걸쳐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하면 이란은 중국에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한다는 18쪽 분량의 ‘중국-이란 포괄적 전략동반자 협정’ 초안이 이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면서 “조만간 이란 의회에 제출돼 비준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매체는 “이는 결국 이란을 중동 및 중앙아시아의 수출 허브로 삼으려고 했던 한국의 오랜 계획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매체는 “최근 우리나라의 미래전략 순위에서 이스라엘을 물론 걸프만 아랍국가의 순위가 재편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은 이란과 이란의 남부 이웃국가들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전략에서 이란보다 걸프협력회의(GCC·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등) 국가를 우선시하는 전략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미국이 핵 합의를 파기하고 2차 제재에 들어간 이후 이란은 반복적으로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예치된 이란의 석유 수출대금 70억달러(8조 4000억원)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언론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의 제재에 가담해 이란의 원유 수출대금을 법적 근거 없이 동결했다며 “외교적으로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주이란 한국대사를 초치하고 국제 법정에 소송해 이 채무를 갚도록 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 발언에 즉시 항의하고 사이드 바담치 샤베스타리 주한 이란대사를 초치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란 수출대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적 차원의 교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했다. 이번 달 중 1차 화상회의가 열린다.